수술실은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다. 작은 행동이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수술대 주변에는 심전도, 산소포화도, 혈압 등 환자의 생체신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모니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수련의 시절 수술실 모니터를 통해 쉼 없이 쏟아지는 생체신호 데이터를 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느꼈고, 그 체험이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의료 현장은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인 동시에 기술과 의학이 만나는 연구 현장이 되고 있다.
이상욱 교수는 원래 KAIS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공학도였다. 재활로봇을 개발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실제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공학이 아닌 의학을 선택했고 실제 환자와 의료 현장을 이해하려면 임상을 경험하라는 조언을 따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공학과 의학 모두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을 돕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공학자는 의학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의학자는 공학적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한계가 생겨요. 그래도 두 가지 영역이 서로 소통하고 융합했을 때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공학적 언어에 대한 이해도도 있고, 의료현장도 경험했기 때문에 두 분야의 융합에 있어서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의 등장은 이상욱 교수에게 더 큰 영감을 주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보며 AI가 의료 현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느낀 그는 챗GPT 등장 전부터 의료 현장과의 융합을 준비해 왔다. 코딩 등 공학적 기술에 익숙한 그는 통계와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고 의료 인공지능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며 한발 먼저 AI 시대를 대비했다.
이상욱 교수의 예측대로 AI는 매우 빠르게 발전하며 의료 현장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AI 활용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의 활용도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안 기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병원의 의무기록은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어서 연구자들이 손쉽게 정제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고, AI를 활용하면 대규모 데이터를 한꺼번에 연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의료 현장에 활용할 수 없어요. 데이터의 안전성, 보안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을 찾던 이상욱 교수는 동료 의사를 통해 동형암호화기술(Homomorphic Encryption, 암호화된 상태 그대로 연산할 수 있는 첨단 보안 기술)에 대해 알게 됐다. 기존에는 개인의 민감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데이터를 암호화해 보관하고, 이를 연구에 활용하려면 암호를 해제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 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컸다. 동형암호를 이용하면 데이터를 암호화한 채로 연구에 활용할 수 있어서 위험성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여러 기관의 임상 데이터를 모아 실행하는 대규모 빅데이터 기반 연구도 가능했다. 이상욱 교수는 이 동형암호화 기술을 의료 데이터에 접목한 AI 다기관 예측 모델을 제시했다. 또 서울아산병원 AI혁신지원실 담당교수를 맡아 병원 내에서 다양한 AI 도구가 잘 정착되고 안전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하나 이상욱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료진을 위한 기술이다. 환자에게 좋은 진료를 제공하려면 의료진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수술 후 통증 자동 평가 시스템도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수술 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의료진이 자주 환자를 찾아가 통증 정도를 묻고 확인하는데, 카메라인를 통해서 환자의 얼굴 표정을 포착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통증 평가 척도(NRS,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0~10단계 수치로 나타낸 척도)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확인 부담을 줄이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신속하게 파악해 대처할 수 있다. 여기에 동형암호화 기술을 적용하면 얼굴 등 개인의 민감정보를 보호하며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마취통증의학과에서 기본적인 의료 행위인 기도 관리에 AI와 동형암호화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도 시작했다.
"AI 같은 기술이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효과적으로 덜어준다면 환자에게 집중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의료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의료환경의 변화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직원들의 환경을 개선해서 더 나은 진료환경으로 바뀌는 방향으로 나아가가지 않을까요."
이상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같은 좋은 의료환경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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