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RNA 간섭현상, 노벨상을 넘어 치료제로 2021.09.10

의생명과학교실 김용섭 교수

 

2006년은 노벨상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운 한 해였다. 먼저 RNA라는 하나의 주제가 노벨 생리의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휩쓸었다. RNA 간섭현상을 발견한 앤드루 파이어 스탠포드 의대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매사추세츠대 의대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RNA의 합성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밝힌 로저 콘버그 스탠포드 의대 교수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노벨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지 각각 8년, 5년만에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노벨상이 결과 발표 후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 후에나 주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초고속 수여였다. 유전물질인 DNA로부터 기능하는 단백질 사이의 중간자로만 여겨졌던 RNA가 드디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온 것이다.

 

실제로 당시만 해도 많은 연구자들은 RNA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생물학의 중심원리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로부터 RNA로 전사가 일어나고 RNA로부터 단백질로 번역되어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DNA는 자손으로 전달되는 유일한 물질로 유전학의 핵심주제로, 단백질은 생명 현상의 근간으로 집중 연구돼 왔다. 반면 RNA는 단순히 중간자이며 소위 지나가는 보조물질에 불과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DNA와 단백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현상들로 한계에 부딪혔고 인간게놈지도의 완성 등의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과학자들이 RNA의 새로운 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당시 앤드루 교수와 멜로 교수는 꼬마선충을 이용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중나선 구조의 RNA를 꼬마선충의 세포 안에 주입했더니 꼬마선충이 온몸을 비트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주입한 RNA가 꼬마선충의 근육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생성을 억제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특정 RNA 조각을 주입해 인위적으로 유전정보의 전달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RNA 간섭현상이라 명명하였고 이후 여러 연구팀에서 인간세포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에서도 RNA 간섭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하였으며 점차 일반화됐다.

 

이후 RNA 간섭현상은 분자생물학 연구의 핵심주제로 자리잡게 된다. 세포 내에 존재하는 작은 RNA 조각(마이크로RNA)이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해 생명현상을 조절한다는 것이 많이 밝혀졌으며 이 마이크로RNA가 파킨슨병이나 면역질환, 암 등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보고됐다. 또한 RNA 간섭현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외부에서 작은 RNA조각(siRNA)을 합성하여 세포에 주입하면 원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데 이 방법은 분자생물학 연구에 있어 핵심적인 기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는데 있어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데 RNA 간섭현상을 통해 손쉽게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최초로 RNA 간섭현상을 이용한 의약품에 대한 승인을 발표했다. 승인된 의약품은 바로 미국의 바이오벤처 앨나이람 파마슈티컬즈의 파티시란(제품명 온파트로)으로 희귀 신경 손상 질환인 유전성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이 질환은 유전자 변이로 잘못 접힌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이 신경과 심장 등 여러 장기에 쌓이면서 말초신경병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파티시란은 변이 트랜스티레틴의 mRNA와 결합하여 파괴하는 RNA 간섭현상을 통해 세포 내에 잘못 접힌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이 쌓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RNA 간섭현상을 발견한 지 20여 년 만에 마침내 의학계에 데뷔한 것이다.

 

이후로도 다양한 RNA 간섭현상 기반 치료제가 출시되었다. 2019년에는 앨나이람의 기보시란(제품명 기브라리)이 급성 간성 포르피린증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고, 이어 2020년에는 루마시란(제품명 옥슬루모)이 원발성옥살산뇨증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최근에는 노바티스의 이상지질혈증 신약인 인클리시란(제품명 렉비오)이 유럽에서 처음 승인받기도 했다. RNA 간섭현상 기반 치료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6년 노벨위원회는 RNA가 단순히 DNA와 단백질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물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유전자 발현조절 물질이라는 것을 밝힌 앤드루 파이어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교수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이 분야는 이후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실험 기법으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난치질환 치료제로 응용되고 있는 매우 잠재력이 큰 분야이다. 그러나 더 많은 난치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개발되기 위해서 원하는 세포에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약물 전달법이나 안전한 RNA조각 설계 등 많은 난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치료제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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