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뒤늦게 찾은 나의 길 2021.09.16

재활의학과 이승학 교수

 

 

이승학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으로 스리랑카에서 2년을 보냈다. 한국에서 의료 봉사팀이 올 때면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가까이서 지켜본 의사의 일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의사들과의 대화에선 직업적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당시 이러한 경험이 인생행로를 바꾸는 촉발점이 될 줄은 몰랐다. 대학으로 돌아와 ‘내가 뭘 하며 살아야 하지?’ 고민할 때 공학 박사가 아닌 의사가 떠올랐다. 

 

내가 해야 할 일

대학 졸업 후 의대로 편입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막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공을 바꾼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의대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공학과 접점이 생길 여지가 많은 재활의학과를 택했다. “재활 치료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진 않지만 환자가 일상에서 느끼는 변화는 무척 큽니다. 환자들이 좋아지는 걸 보고 회복의 말을 건네면서 제가 느끼는 기쁨도 크고요.” 

 

서울대병원 근무 당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병원에 파견을 나갔다. 이 교수는 그곳에서 재활의학 의사로서 필요한 훈련의 반 이상을 쌓았다고 회상했다. “인력과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에만 있으면 모를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산재 환자는 빈곤층 외상 환자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건강보험 의료 수가 체계에선 필요한 재활 치료를 받기 어려웠어요. 산재보험 재활 치료 수가 체계를 바로잡으려고 재활 의료 전문가들과 밤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정책을 설계하는 자리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제도가 바뀌자 산재 환자의 비중이 30%에서 70% 이상으로 늘었다. “불과 2년 사이에 전문가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고 현실이 어떻게 바뀌는지 경험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감에 산재 관련 과제를 여전히 붙잡고 있네요.”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에서의 역할은 또 달랐다. 난도 높은 급성기 환자를 빠르게 처치하고 앞으로의 재활 방향을 설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급성기 환자들이 기다리거든요.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동안 목표한 데까지 닿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득합니다. 환자들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역 재활전문병원과의 네트워크를 키워야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 역할을 진료실에만 가두지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안고 있던 연구 과제도 서서히 성과를 보이고 있다. 말초신경 손상 동물 모델 연구다. 보통 신경 손상 환자에게 근전도 검사를 시행하는데 바늘을 일일이 찔러 평가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환자들에겐 괴로운 검사로 통한다. 1900년대 중반부터 임상에 도입된 고전적인 검사 방식의 대안을 고민하며 동물 실험을 10년 가까이 진행해 왔다. 신경이 손상된 이후 근육에서 일어나는 분자적 변화를 시각화하는 분자 영상 기법 연구가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내용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는 중이다. 

 

즐거운 졸업을 기다리며

심장 수술 후 뇌경색이 온 50대 환자가 찾아왔다. 건설 회사의 전기 기술자였다. 감각신경이 손상돼 한쪽 손과 발의 움직임이 불편했다. 급성기 재활로 일상생활은 가능해졌지만 섬세한 손동작은 어려웠다. 한 가정의 가장인 환자는 직업복귀소견서를 부탁했다. 이 교수는 산재 병원에서의 경험을 살려 환자의 신체 상태를 기반으로 직장 복귀 시 직무 변경을 권고하는 내용을 자세히 적었다. 2개월 뒤 환자는 해고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금만 기능이 떨어져도 인력을 대체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환자에게 최적의 재활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약물치료와 상지 재활, 심장 재활 등을 병행하며 1년을 보냈다. 환자를 괴롭히던 통증은 나아졌고 직업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원직 복귀는 못 하셨지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분 좋게 졸업시켜드릴게요!”

 

환자가 겪는 질환은 가정, 직장, 심리,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재활 치료는 포괄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영역의 재활 치료사가 있는 거고요. 또 기능 평가를 통해 가장 중요한 문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치료를 이끌어 갑니다. 같은 진단명, 비슷한 증상의 환자라도 포괄성, 기능 평가, 목표라는 세 가지 요소를 챙기다 보면 재활의 경로는 천차만별입니다. 가끔은 제가 입시반 담임 같은 기분이 들어요. 모두 좋은 소식으로 졸업시켜드리고 싶죠.”

폐 이식을 받은 소아 환자가 진료실에 왔다. “넌 건강해지면 뭘 제일 하고 싶니?” “아빠랑 야구하는 거요!” 이 교수는 이미 야구하는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좋아. 그게 우리의 재활 목표야.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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