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들의 달라진 일상을 상상하며 2021.10.19

성형외과 박창식 교수

 

 

머리에 뭐가 났다며 한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혈관육종이었다. 박창식 교수가 이제껏 만난 혈관육종 환자들은 예후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악성 조직이 상당히 넓게 퍼져있었다. 머리의 뼈만 남긴 채 절제하고 재건했다. 큰 수술이었음에도 할아버지는 회진 때마다 “교수님 밥은 먹었어요? 나 이제 괜찮은 거 같아요”라며 인사했다. 박 교수가 오히려 매번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퇴원하고 3개월 뒤, 할아버지가 열이 난다며 자녀가 찾아왔다. “당장 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서울아산병원까지 오지 못하고 근처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병원에 전화해 경과를 확인하고 씁쓸해 하는 박 교수에게 환자 자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동안 마음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박 교수는 환자들과 더 오래 함께 웃으며 가고 싶었다.

 

현장에서 배운 역할

안동에서 공중보건의로 지낼 때였다. 지역의 유일한 성형외과 의사였다. 성형외과 치료를 받으려면 대구로 가야 했던 환자들이 연일 몰려왔다. 성형외과의 크고 작은 치료를 트레이닝하는 시간이 되었다. 환자에게 “이제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대학병원의 펠로우로 근무하며 하지 재건 분야의 매력을 알아갔다. 미세 수술은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큰 수술이지만 꼭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병변 제거를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암을 발견하기도 했다. 회복 소식을 전할 때는 환자와 함께 기뻤고, 큰 병을 알리거나 다시 수술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할 때는 환자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답답한 내용은 연구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갔다. “저는 환자가 가진 회복력을 믿습니다. 무조건 수술을 권유하거나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경계하죠. 의사의 역할은 환자들에게 선택의 길을 넓혀주는 조력자라는 걸 알았거든요. 환자와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 이후 삶의 질까지 고려하게 됐습니다.”

 

절단 환자들이 준 숙제

피부암으로 팔 절단을 권유 받은 환자가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태였다. 하지만 환자는 끝까지 절단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살을 뗀 자리에 다리 피부를 이식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에 재발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환자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울었다. “수술실은 암 덩어리를 떼고 치료받는 공간이에요. 그것만 생각하셔야 해요. 우리 각오했잖아요.” 박 교수의 이야기에 환자는 눈물을 닦았다. 환자의 상심을 풀어가는 건 또 하나의 숙제였다. 

하지 재건 환자 중엔 당뇨발이 많다. 당뇨로 인한 주 절단 환자는 매년 천 명씩 발생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안타까운 건 절단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0%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충격이나 운동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절단 환자들은 상실감뿐 아니라 사회적 소외감을 토로했다. “열심히 치료하는데 행복해하지 않는 환자를 보는 게 가장 가슴 아파요. 제 환자들이 좀 더 활동적이고, 주변 시선에 당당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로봇 의족이 대안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누구도 ‘아이언맨’을 환자로 보진 않잖아요!”

 

로봇 의족에 담긴 꿈

2019년 미국에 가서 로봇 의족의 핵심 기술인 ‘말초신경 인터페이스’를 배우고 돌아왔다. 성형외과 홍준표 교수와 서현석 부교수를 주축으로 양다리가 절단된 환자를 위한 ‘스마트 전자제어식 하지 의지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국가 과제를 수주하고 11명의 연구원을 모았다. 특정 동작에 따라 달라지는 근전도를 분석해 반복 훈련을 거치며 데이터를 쌓았다. 이를 AI로 학습 시켜 로봇이 환자의 의도를 인지하고 정교한 동작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정교한 움직임을 위해 신체 절단 수술 단계부터 적용할 기술을 개발했다.

열망이 큰 만큼 진행도 빨랐다. 관련 논문으로 지난해 대한성형외과학회에서 우수연구상을 수상하고 기술 특허출원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부턴 하지 절단 장애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원래 계단 한 칸마다 양발을 짚고 올랐는데 이젠 남들처럼 한발씩 번갈아 오를 수 있네요!” 임상시험 대상자의 생생한 반응에 이어 재활의학과의 보행 분석 소견도 만족스러웠다. “진료실에서 절단 장애인들이 들려주는 소원이 연구 동력입니다. 아이와 수영장에 가고 싶다는 하지 절단 환자, 아내와 와인 한잔 기울이고 싶다는 팔 절단 환자의 달라진 일상을 상상해요. 내년 말이면 국산 로봇 의족을 수입 제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환자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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