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좋은 간호사가 되는 법 2021.10.29

내과간호1팀 박희수 사원

 

 

입사할 때 나는 정말 좋은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무슨 일이든 척척 잘 해내고 모두에게 친절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한 달을 채 가지 못했다. 부족한 능력에 비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환자를 봐야 했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나를 괴롭게 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에서 신규 간호사인 나는 환자와 보호자, 선배들의 질책 속에 자책하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좋은 간호사를 꿈꿨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환자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못하는 바쁘고 정신 없는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몇 해 전 신장암 진단을 받고 힘든 치료를 마친 환자는 이번엔 담도암이 의심되어 입원을 했다. 이제 겨우 다 나았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암이라는 말에 환자는 크게 낙담하고 절망했다.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 수술은 하지 못한다는 말에 병원도, 의료진도 본인을 포기한 거라며 욕을 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며 검사와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갈 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간호사만 보면 화를 내는 환자가 야속했지만, 한편으론 의료진이 환자를 포기한 게 아니란 걸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간호했다.

이제 살 이유가 없으니 죽어버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환자에게 “이전에도 그 힘든 항암치료 열심히 받고 잘 이겨내셨잖아요. 이번에도 해낼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뿌리치는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아 드렸다. 밤 근무 땐 환자가 늘어놓는 푸념을 말없이 들어주기도 했다. 가끔은 환자가 늘어놓는 불만에 나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라며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고, 앞으로의 치료과정을 두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와 이야기하며 그 두려움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매순간 마음 하나하나를 담아 간호했다.

 

환자가 퇴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새벽, 어둠 속에서 환자의 배액관을 비우는데 자는 줄 알았던 환자가 말없이 주머니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게 뭐냐는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처음 보는 어색한 미소만 내비쳤다. 마침내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을까. 환자와 보호자의 아픈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토록 열심히 응원해주는 의료진을 믿고 다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보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 수백 번 짜증을 낼 때마다 단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말과 앞으로도 그 미소를 잃지 말아달라는 말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게 간호사로서 환자에게 받은 나의 첫 편지였다. 마음을 닫았던 환자가 마음을 열어준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후에도 나는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을 만났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힘든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그들을 마주하며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정말 많지만, 나는 편지를 받은 그 날 이후로 늘 진심을 다해 그들을 대하려고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손길이 주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간호하고 그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오늘도 난 감사하고 또 보람을 느낀다. 이런 경험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다음 환자에게도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간호사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그게 바로 내가 꿈꿔왔던 좋은 간호사가 아닐까.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