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과학적 호기심에서 환자의 신뢰까지 2021.11.18

안과 이준엽 교수

 

 

“새로운 걸 발견하고 증명하려는 욕심이 많아요. 의대 면접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병원 모임에선 뜬금없이 「사이언스」나 「네이처」의 내용을 발표했죠. 워낙 긍정적이어서 자신감으론 일등일 거예요(웃음).” 이준엽 교수가 망막 분야를 선택한 것도 완치가 어려운 질병에 대한 도전 의식 때문이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풀어갈 능력을 키우기 위해 카이스트의 박사과정을 거쳤다. “4년간 진료 현장에 있었다면 더 경험 많은 의사가 되었겠죠. 하지만 저는 기초 연구를 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를 찾는 과정을 체득하고 싶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역할

망막과 유리체라는 작은 공간을 치료하는 수술은 한두 시간이면 끝난다. 그럼에도 수많은 변수가 기다린다. 때로는 경과가 좋지 않거나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 교수는 만에 하나 자신의 노력과 성의 부족으로 결과가 달라지지 않도록 집중하며 다양한 임상 경험과 질문을 쌓아왔다. “어려운 질병이 많아 방어적으로 환자를 대하기 쉬워요. 혹여나 환자와 불편한 사이가 될까 봐서요. 하지만 저는 환자분들께 되도록 언제쯤, 어떻게 좋아질지 이야기합니다. 환자 스스로 용기를 갖는 동시에 저의 치료에 안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책임은 더 무거워지겠지만 그만큼 철저히 준비하는 거죠. ‘괜찮다’는 한마디를 환자에게 하려면 더 이상의 좋은 치료는 없다는 확신을 저부터 가져야 합니다.” 

 

이 교수는 스스로에게 서울아산병원에 걸맞은 의사인지 자문하곤 한다.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병원이라는 무게감 때문이다. 종종 그의 연구 관련 기사를 보고 찾아온 환자도 있다. 그러나 실명을 앞둔 환자에게 긍정적인 대답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신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으면 새로운 치료법이 나왔을 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저까지 치료가 안 된다고만 하면 환자들은 병원에 오는 걸 아예 포기할 거예요. 환자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메시지와 가이드를 주는 것 역시 제 역할인 것 같습니다.”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

펠로우를 마칠 즈음 한 환자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어려운 질병에 시력이 좋지 않던 환자라 내심 의아했다. 편지에는 안 보이는 것을 잘 이해해 주고 일상과 맞닿는 조언을 해줘서 고마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치료 경과를 회피하기보다는 환자의 불편에 공감하고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춰 진료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방 병원에서 근무할 때였다. 의료혜택을 제때 받지 못해 양쪽 눈 실명을 앞둔 환자가 찾아왔다. 최선을 다해 수술하고 이후 진료마다 달라지는 일상에 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수가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자 환자는 멀리서 찾아왔다. “처음엔 눈이 불편한 채로 경상도에서 올라와 잠깐 진료를 받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어요. 그런데 환자는 몸이 나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잘 이해하는 의사와 대화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거였어요. 그 힘으로 일상을 견디다 또 오는 거죠. 그러고 보면 열심히 최첨단 의술을 개발하려고 애쓰지만 환자들이 정작 제게 원하는 건 믿음과 위안, 따뜻한 말 한마디인 것 같아요. 짧은 진료 시간이 아쉽지 않도록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미리 써온 질문지가 있으면 가로채 설명하며 시간을 아끼죠. 제 진료 스타일에 당황하던 환자들도 차츰 궁합을 맞춰 가요. 뭐든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게요!”

 

한 걸음씩 꾸준한 발걸음

이 교수는 눈의 혈관과 신경을 연구하며 각각의 존재 이유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질병의 발생 기전을 알게 되고 치료제 개발로도 이어질 것이다. 10년째 망막과 맥락막의 혈관 연구를 통해 황반변성과 당뇨망막증을 치료할 실마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다수의 국내 학술상과 세계안과연구상(2016), 미국 시과학 안과학회가 수여하는 젊은 의과학자상(2017)에 이어 지난해에는 노바티스가 처음으로 도입한 글로벌 혁신 연구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대로 밝히고 싶은 욕심에 큰 그림을 그릴수록 연구 진도는 더뎌요. 잘 나온 결과를 담은 페이퍼 사이사이에는 무수한 실패가 담길 겁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검증하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자이자 임상의로 두 마리의 토끼를 쫓지만 연구가 잘 풀리지 않거나 실명 위험 환자를 만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이 교수는 특유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연구가 안 풀릴 땐 환자에게서 위안을 얻고, 환자의 경과가 안 좋을 땐 연구에 파고들며 마음을 환기합니다. 제 연구 결과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날까지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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