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에이즈의 발견 2021.12.06

미생물학교실 조영걸 교수

 

 

1981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심한 면역 결핍 시 발생하는 주폐포자충폐렴(PCP) 환자 5명이 보고됐다. 그해 7월에는 뉴욕, 캘리포니아에서 카포시 육종, PCP 혹은 기회감염 26건이 보고됐다. 카포시 육종은 피부에 나타나는 악성 종양으로 면역결핍과 관련된 드문 질환이다. 첫 5명의 환자는 모두 동성연애자였고 T 림프구 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돼 있었으며 림프구 증식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세포성 면역결핍자로 확인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실무팀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1982년에는 설명되지 않는 전신성 림프절병증, 피로, 발열, 체중감소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보고됐는데 역시 모두 동성연애자였다. CDC는 에이즈를 ‘세포성 면역결핍과 원인불명의 중증기회감염증 혹은 악성 종양을 가진 질환’으로 정의 내렸다. 미국에 사는 아이티 사람, 혈우병 환자, 수혈자, 헤로인 중독자, 에이즈 환자의 자녀와 성 상대자에게서 주로 발생함을 알게 되면서 일명 4 - H가 에이즈 위험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연구소 몽타니에 박사팀은 1983년 에이즈 환자의 림프절 생검 조직을 배양한 결과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인 HIV - 1을 발견했다. 배양 상청액에서 역전사효소 활성과 바이러스 형태의 입자를 관찰했더니 이 바이러스가 다른 건강한 사람의 T 림프구를 감염시킬 수 있지만 B 림프구 등은 감염시킬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몽타니에 박사는 HIV - 1을 T 세포 친화성 레트로바이러스로 결론내리고 LAV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업적으로 2008년 바레 시누시 박사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논란이 된 것이 미국 국립암연구소 소장이던 로버트 갈로 박사가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갈로 박사 역시 에이즈 환자의 말초혈액 T세포에서 HIV - 1 바이러스를 분리해 HLTV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했는데 몽타니에 박사팀의 발표와 시기가 거의 같았다. 갈로 박사는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로 HIV - 1을 분리하고 대량으로 바이러스를 생산할 수 있는 T 세포 라인을 확립했다. HIV - 1 분리의 특허권을 놓고 몽타니에 팀과 갈로 팀 간에 논란이 일어 양국 정상회담 의제로 비화된 적도 있다. 갈로 박사는 인간 염색체 유전자의 5~8%를 구성하고 있는 레트로바이러스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에이즈 연구자들이 2009년 「사이언스」에 ‘숨은 영웅, 로버트 갈로’라는 제하의 연판장을 실어 갈로 박사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 공히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필자는 1990년 4월 국립보건원 에이즈과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에이즈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에이즈 환자에게 홍삼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국내 HIV - 1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여 국내 혈우병 환자 20명에게서 집단 발생한 에이즈 감염 원인을 규명한 바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 길이가 짧을수록 병원성이 크다는 새로운 사실을 보고한 바 있다. 필자는 2008년 5월 파리 파스퇴르연구소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몽타니에 박사와 시누시 박사, 갈로 박사의 연설과 강연을 들었다. 당시 갈로 박사를 제일 앞 줄에 앉혀 놓고 그간 주고받은 친필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모든 청중에게 HIV - 1 분리의 주도권이 프랑스팀에게 있음을 각인시켰다. 학회 참석자들의 연회가 에펠탑 2층 레스토랑에서 열려 보안 검색을 기다리느라 줄을 서있던 중 시누시 박사가 필자 바로 앞에 서 있길래 “당신 강의를 들어보니 당신네가 노벨상을 받아야겠더라”라고 덕담을 건넸는데 마침 그 해 가을 정말로 노벨상을 받게 돼 이메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도 받았다. 에펠탑 2층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갈로 박사와 미국 알레르기 및 감염병연구소 소장 앤서니 파우치 박사 가운데서 함께 사진을 찍은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에이즈는 ‘혈중 바이러스 농도가 예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초의 감염병이다. 1997년부터 다제요법이 도입돼 최근에는 하루 한 알 복용하면 될 정도로 편리해졌고 6개월에 한 번 주사를 맞으면 되는 약도 개발돼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매년 1,000명 이상 진단되며 연간 120명 내외가 사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단과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V - 1은 바이러스들 중 가장 유전자 길이가 짧은 축에 속한다. 변이율이 가장 높아 아형만 9가지인데 이들 아형간 재조합 바이러스는 118가지에 이른다. 전세계적으로 아형 C가 약 50%를 차지하고 선진국과 우리나라에 흔한 아형 B는 약 12%를 차지한다. 한국에는 외국형 B와 구분되는 한국형 B가 존재한다. 이러한 높은 변이율과 암 유발 가능성 때문에 에이즈 백신 개발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뤼크 몽타니에 (1932~)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

프랑스 파리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의료연구위원회, 스코틀랜드 바이러스학연구소 근무 후 프랑스로 돌아와 라듐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파스퇴르연구소에 바이러스성 종양학부를 창설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프랑수아즈 바레 시누시 (1947~)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바이러스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파스퇴르연구소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했다.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관 고문, 국제 에이즈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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