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간호교육 에세이] 눈높이에 맞춘 환자 교육, 그 어려움에 대하여 2022.03.03

 

 

‘간호사는 실무자, 교육자, 자문가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대학교 간호학개론 수업 시간에 들었던 내용이다. 당시 강의를 들으면서 평소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기 쉽게 교육하고자 했던 내 꿈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사 후 바쁜 현장에서는 업무에 집중하느라 환자의 말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교육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전달을 했던 것 같다.

 

환자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다

수술 후 비위관을 일주일 정도 유지해야 했던 환자는 폐합병증으로 산소치료도 함께 하고 있는 상태였다. 환자는 많이 불안했는지 수시로 콜벨을 눌러서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 주길 원했다. 또한 화장실을 갈 때도 매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콧구멍에 연결돼 있는 비강캐뉼라(nasal prong)를 제거하는 방법을 보여드리면서 “다음에 화장실 갈 때는 이렇게 빼고 가시면 돼요. 비위관 빠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라고 말한 뒤 다른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런데 1시간 정도 지난 후 콜벨이 울려 병실에 가보니 환자의 비위관이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히 시범을 보였고 매우 중요한 것이라 빼면 안 된다고 여러 번 교육을 했는데도 혼자 빼기도 어려운 비위관이 빠져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자는 수술 후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아서 뭐가 뭔지 몰랐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내 교육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한번은 매우 화가 난 보호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퇴원 후 다음 진료를 받으러 올 때까지 식이에 대한 교육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밥까지 섭취가 가능한 환자인데 죽만 먹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 다른 반찬 없이 흰죽만 계속 섭취한 상황이었다. 한여름에 연로한 부모님이 흰죽을 끓이기 위해 불 옆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따지는 보호자의 말에 처음에는 병동에서 시행한 교육 내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호자의 화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나 또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설명을 들을 때 과연 집중해서 다 들었는지, 못 알아들었으면서 이해했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았다. “환자분이 이해 못하셨다면 저희가 제대로 교육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에 보호자의 화는 누그러졌고 본인도 부모님이 받아온 안내문을 잘 챙기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날의 대화를 통해 환자 교육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학부 시절에 피교육자의 반응, 이해도 평가가 중요하다고 수없이 배웠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환자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잘 확인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을 했다. 일련의 경험 이후로는 교육을 할 때마다 마무리 즈음에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환자 스스로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이 습관은 전문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노하우들을 장황하게 설명할 때가 있다.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내용을 빠지지 않고 가르쳤다고 나름의 위안을 하지만 정작 기본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잊혀지는 부작용이 있다. 결국 내가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서 설명한다고 해도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아니라면 효과적이라 보기 어렵다.

 

“아픈 상태로 떠나 보낼 수 없어서”

어느 날 젊은 여성 환자가 상처장루클리닉을 방문했다. 보호자는 당신 딸이 말기 암 환자인데 최근 상태가 악화되어 엉덩이에 깊은 욕창이 발생했다며 꼭 치료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환자 상태를 보니 도움을 받으면 자세 변경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전신 컨디션을 고려할 때 호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보호자인 어머니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했다. 보호자가 한 번의 교육만으로 잘 따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중요한 내용을 반복하여 설명했고 한 달 뒤 외래에서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병세가 악화된 환자는 한 달 뒤 휠체어를 타고 왔는데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욕창은 치유가 되어 있었다. “엉덩이가 저렇게 아픈 상태로 딸을 떠나 보낼 수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드레싱을 하고 자세를 변경해 주었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마음 속으로 눈물이 났다. 더불어 그동안 ‘이 정도 선에서는 안 될 거야’라고 한계를 규정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교육자로서 많이 부족하고 효과적인 교육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환자가 쉽고 재미있게 내 교육을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 동료들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교수법을 공부하기도 한다. 이렇게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아들 딸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암병원간호1팀
여현정 대리

암병원간호1팀 여현정 대리는 2008년 입사해 2016년부터 상처장루실금 전문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전문간호사회 교육학술분과 리더를 맡고 있으며 환자·간호사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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