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상황에서 쉼 없이 일하다 보면 등에는 땀이 촉촉해지고 입이 바짝 마른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물 마실 시간, 화장실 갈 여유가 간절해지는 순간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회복만을 위해 애쓰다 보면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사원증을 단 채 병동을 누빈다. 그동안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일터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우선 내 일터에는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일터는 어떤 공간인가? 며칠 전, MZ세대는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직장 내 성공을 개인의 성공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직장이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터는 내가 사고하고 꿈꾸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하며 매년 스스로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내가 지금도 존경하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신다.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환자를 간호했고 후배들을 이끌어 주었다. 최신 의료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으며 휴식 시간에도 규정집을 찾아가며 후배가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랫사람과 일할 때도 자신이 잘못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인정했으며 앞에서 표현하지 않더라도 뒤에서 칭찬을 해주었다. 후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퇴근 후 사랑과 격려가 담겨 있는 장문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잘 하고 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다음 날 다시 힘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선생님을 통해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내 목표는 그 선생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다. 내게는 존경하는 선배처럼 되는 것이 일터에서의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하는 강한 동기가 된다.
소중한 내 일터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환자가 없다면 병원은 존재할 수 없고, 환자가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내가 일할 수 있다. 물론 일터에는 수많은 고뇌와 벅참이 있다. 정규 업무만을 수행하는 날은 거의 없다. 생명과 직결된 응급상황이 닥치고, 일이 몰아쳐서 즉시 우선순위를 설정해 이행해야 할 때도 있다. 상태가 악화하는 환자를 간호하면서도 다른 환자나 보호자의 불편과 고충에 대해 응대를 해야할 때는 가야할 길에 두꺼운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급성기에서 회복되어 안정을 찾아가는 환자를 볼 때, 상태 변화를 조기에 인지해서 악화를 막을 때, 암성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적절한 중재를 제공하는 순간에는 가슴 벅참과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마음 속 시멘트를 한순간에 녹여준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2년 전 내가 담당했던 환자를 최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해서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고, 치료 과정에서 든든한 라포가 형성되어 내게도 힘이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환자는 암 재발과 반복되는 항암으로 상태가 안 좋아졌고 의식이 점점 저하되는 상황이었다. 패혈증과 더불어 욕창, IAD(실금관련피부염)도 갖고 있어 항생제를 써도 염증 수치가 호전되지 않았고, 매일 설사를 10~12회 반복해 회음부 부위가 모두 짓무른 모습이었다. 경피적 신루관을 교체해야 감염원을 막고 신수치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의식 혼돈으로 모든 게 싫고 안 할 거라며 말초 동맥관을 제거하려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며칠 후 의식을 회복한 환자에게 출근하자마자 달려가 “오늘은 저 기억하세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라고 말하자 “내가 미안해… 고마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손을 한참 잡고 있었다. 치료 과정을 끝까지 함께 해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 주는 환자들, 그리고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분들을 보며 내가 한 간호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오늘도 감사하며 출근한다. ‘벅참’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오늘도 나는 일터에서 가슴 벅참을 느끼고, 벅차다고 생각했던 업무를 마무리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시시각각 느끼는 벅참이 어떤 벅참일지 나는 모르지만 그것이 가슴 벅참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일터에서 주어지는 일과 변수들이 벅찰지라도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다양한 가슴 벅참이 지친 몸과 마음을 감싸주기를 소망한다.
응급간호팀
라연경 사원
응급간호팀 라연경 사원은 2020년 입사해 암병원간호2팀에서 암 환자를 간호했고, 현재는 코로나19의 최전선인 감염관리센터(CIC)에서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긍정, 사랑, 열정으로 환자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매순간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