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질문 2022.03.15

신경외과 정상준 교수

 

 

5살 때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정상준 교수는 ‘뇌출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아버지의 왼쪽 움직임을 어색하게 만든 병이었다. ‘왜 머리에 생긴 문제로 몸이 불편해진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그를 의대 진학으로 이끌었다. 예과 2년 때 뇌출혈이 재발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뇌를 직접 치료하는 신경외과 의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을 찾아주고 있다.

 

경험이 먼저 닿다

뇌종양, 모야모야병, 조기유합증, 척수이형성증 등 정 교수는 다양한 소아 뇌 질환을 치료한다. 그중 뇌종양 환자가 가장 많다. 보통 종양이 생기면 뇌압이 높아져 두통과 구토, 경기, 처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만으로 검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배탈 치료를 하다가 응급실에 와서야 종양의 실체를 알게 된 보호자는 자책하거나 미리 발견하지 못한 병원을 원망한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보호자의 마음을 정 교수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환아 가족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따르거나 옳지 않은 정보에 휘둘릴 때는 설득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환자에게 투사될 때가 있어요. 종종 복잡한 심경이 들죠. 처음엔 환자와 보호자로 인해 치료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담당 교수로서 뭘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여유를 갖고 설명하면서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도 드리고요.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면 지원 방법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제가 쌓아온 경험이 지식만큼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심지어 제 딸아이의 육아 경험도 요긴하게 쓰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라는 기억 때문에 수술을 마친 환아들은 정 교수를 경계하거나 거리감을 둔다. 그럴 때마다 정 교수는 환아가 안고 있는 장난감에 슬며시 말을 건다. 의사가 아닌 친구로 마음의 문을 여는 지름길이다. 그러면 남은 치료는 한결 수월해진다.

 

응원을 주고 받으며

최근에 생후 20일 된 아이를 수술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와 얼굴 한쪽을 채운 종양은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뇌의 중요한 부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종양을 뗄 수 있는 선까지 도달해야 했다. 많은 변수를 고민하며 수술 방침을 명확히 하고 이비인후과, 마취통증의학과, 성형외과 등과 협업을 진행했다. 그래도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수술하다가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는 뇌 수술에 대한 불안을 토로했다. 반복적인 수술과 수술 후 합병증이 예상되면서도 가야 하는 길일 때는 정 교수 역시 마음이 무겁다. “일단 해결할 방법이 있고 수술 후에도 약물치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우리가 같이 갈 겁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만날 때마다 현재진행형의 보람을 만끽한다. 

특별히 고마운 환자도 있다. 뇌종양으로 의식도 좋지 않던 청소년 환자였다. 위험한 위치의 종양을 박리하면서 환자에게 몸의 불편감이 나타났다. 치료를 거듭하며 회복된 환자는 방학에 진료를 올 때마다 손수 쓴 편지와 선물을 준비했다. ‘교수님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간단한 내용의 편지였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담겨있었다. “보통 감사 표현은 부모님의 몫이에요. 그런데 이 환자는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그대로 표현해줬어요. 되짚어보니 저는 눈앞의 치료에 집중하느라 그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내가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아 치료의 기준과 방법을 찾으며

정 교수는 요천추지방종에 관한 연구로 지난해 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의 학술상을 받았다. 신경 끝에 들러붙은 지방 조직이 신경을 당기며 장애를 일으키는데 지방종을 제거하고 재건하는 치료법이 모두에게 안전한 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밝힌 연구였다. 최대한 많은 증례를 모아 어떤 환자들에게 주의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앞으로도 기존의 경험에 의존했던 소아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고 성인에게 먼저 활용되던 최신 기법을 소아 환자에게 접목해 나갈 계획이다. “뇌는 다루면 다룰수록 참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느끼는 자부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죠. 특히 소아 파트는 성인 뇌의 축소판이 아닌 데다 질환군이 워낙 다양해서 환자마다 생각해야 할 게 많습니다. 수술이 도움이 될지, 수술 목표는 무엇이고 어떤 전략을 쓸 것인지 수많은 결정의 연속이죠. 배경지식과 경험, 전문성에 덧붙여 환자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고요. 환자에겐 따뜻하지만 수술할 때는 더 냉철해지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련은 여전히, 계속되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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