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36.5℃로 만드는 365일] 감염관리센터의 시작을 함께하며 2022.03.17

 

 

‘응 급 간 호 팀’

 

이 다섯 글자는 간호사로서 나의 삶에 없는 글자인줄로만 알았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빠른 처치가 진행되고, 증상을 치료한 뒤 바로 퇴원과 입원이 이루어지는 응급실에서의 간호보다 좀 더 깊이 있게 질환에 집중할 수 있고 환자, 보호자와 지속적인 라포(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도 쌓을 수 있는 내과계 간호사가 좀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입 간호사 시절 1지망, 2지망, 3지망을 모두 내과계 간호사로 지원하였고, 그렇게 종양내과 병동 간호사로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말기 암 환자들의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간호를 고민하고 마지막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마음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응급간호팀’의 일원으로 감염관리센터 27병동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호흡곤란이 언제 급격히 악화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처치하고 여러 진료과 및 간호 부서들과 협력하며 환자들의 옆을 함께한다. 새로운 시작의 삶에서 나와 우리는 조금이나마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가족과 지역사회의 보금자리 안에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금 머리와 마음을 맞댄다. 앞으로 나의 이야기는 36.5도의 체온이 모여 만드는 365일. 감염관리센터 CIC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2020년 9월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간호하였을 때만 해도 모두 6개월 안에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지고 본 병동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저 멀리 부지를 착공하고 공사가 시작된 가칭 ‘I(Infection·감염)’동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I동 지어지면 가실 거에요?”, “저 건물에는 어떤 곳이 생길까요?”, “새 건물에서 일하면 좋을까요?”라고 다들 내 일이 아닌 듯 넘겼다. 그 사이 6개월의 시간은 1년이 되었고 2022년의 지금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코로나 환자들이 있는 155병동에 남을 인력과 I동으로 새롭게 이동할 인력들이 추려지고 간호간병통합병동 선생님들이 충원되었다. I동은 감염관리센터(CIC·Center for Infection Control)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감염관리센터는 건물 전체에 음압 시스템을 갖춘 감염병 전문 독립건물이다. 응급실, 외래, CT검사실, 병동,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모두 한 건물에 들어와 있는 국내 민간병원 최초의 감염병 전문 독립 건물이다. 센터 구성을 위해 선발대가 투입되었고, 나는 후발대로 2022년 2월 10일 본격 운영을 시작하는 날 155병동의 환자들을 이끌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자! 이제 저와 함께 이삿짐 꾸립시다! 저 오늘 마음 단단히 먹고 왔어요!” 2022년 2월 9일 나는 다음 날 오픈을 앞둔 감염관리센터의 이동을 위해 이사 계획에 맞도록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삿짐을 표시했다. 환자의 짐들을 구분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소독 티슈로 하나씩 소독 후 이중 포장을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짐들 마다 환자의 이름을 붙이고 수량을 기록했다. 그 중 다리 수술을 받자마자 코로나19에 확진 된 할머니가 계셨다. 이미 병동에서부터 들고 오신 짐만 큰 캐리어로 2개. 인계노트에는 ‘퇴원하실 때 가지고 가신다고 함. 냉장고 음식 절대 버리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옮겨가는 것은 내일인데 왜 벌써 짐을 싸냐고, 다 사용하는 거라고 타박하는 할머니께 “저 오늘 포장이사 하러 왔어요. 집 이사할 때 이사 당일 짐 싸지 않으시죠? 내일 편하게 가실 수 있게 포장이사 해서 깨지지 않게 옮겨 드리려구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었는데….. 공용으로 사용하는 중형 냉장고의 냉장칸이 모두 가득 차 있었다. 오징어젓, 조개젓, 어리굴젓 등 각종 젓갈부터 양념장, 기름, 김치가 종류별로 놓여 있었고 이밖에도 떡, 만두, 과일까지 한 가득이었다. 격리구역에는 물건을 최소화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음식의 경우 변질 위험과 추후 반출 과정의 어려움으로 조리된 외부 음식을 드시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미 며칠 동안 방치된 젓갈은 상했고, 김치는 쉬어 있었고, 떡은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감염관리센터에서도 외부 음식은 못 드신다고 설명 드려도 한사코 집으로 다시 가져가시겠다는 할머니를 설득하고 반찬통 하나하나를 다 열어서 보여드리며 정리를 했다. “OOO님 짐이 제일 많아요. 저 여기서 이삿짐 1시간 쌌어요. 그래도 내일 가시는 곳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여기보다 더 깨끗하고 좋아요. 병원에서 야심 차게 지은 거에요. 아마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은 더 없을 걸요? 뉴스에도 신문에도 기사가 엄청 나왔어요. 그 곳을 처음 사용하시는 거에요.” 자랑을 늘어놓으며 앞으로의 미래에 괜스레 기대가 가득 찼다.

 

드디어 2월 10일, 이동이 시작되었다. 환자들을 이동형 음압휠체어와 음압캐리어로 옮기고 앞과 뒤로 보안관리팀과 의료진이 따라 붙었다. 정해진 이동 동선을 따라 코로나 환자들이 있는 155병동에서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감염관리센터까지 끝에서 끝으로의 이동이었다. 이동 수단 하나에 환자 한 명을 이송해야 했기에 몇 번을 계속 왕복했다. 이동한 환자들은 처음 보는 새로운 시설과 외국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1인 격리 시스템에 다들 놀라셨다. “역시 서울아산병원이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서울아산병원이니까 할 수 있는 거에요.”라고 답해드렸다.

 

감염관리센터 CIC는 시스템 확립을 위해 여전히 바쁘다. 새로운 시설에 맞는 규정과 지침, 이동 동선이 만들어지고 수정되고 있으며, 간호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협조와 도움을 보내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인해 일 확진자 수가 20만 명이 넘고 중증환자의 수가 점점 증가하며 벌써 감염관리센터의 모든 병상이 가득 찼다. 감염관리센터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운영을 지속했던 격리병동과 격리중환자실의 병상도 유지 중이다. 원내 확진자 수의 증가와 직원 확진자도 함께 늘어나며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의 고군분투도 고비를 넘기고 있다.

 

 

‘응급간호팀’ 간호사로의 나의 삶과 함께 감염관리센터도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성장의 과정에는 빛나는 도약과 발전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과정에 때로는 넘어지고 휴식이 필요한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뭉친 서울아산병원의 우리이기에, 모두가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센터, CIC’의 이야기이자 36.5도 사람의 체온이 만들어내는 365일 우리의 이야기이다.

응급간호팀
이민주 대리

응급간호팀 이민주 대리는 2011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10년간 암환자를 간호했습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환자 간호를 시작하면서 현재는 감염관리센터(CIC)에서 환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장면과 감정들을 뉴스룸 칼럼 <36.5℃ 사람의 체온이 만들어내는 365일 이야기>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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