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이야기 암환자에게 찾아온 우울증, 암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2022.04.15

 

암환자의 우울증은 일반인보다 4~10배 쉽게 발생하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암 예후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하린 교수가 들려주는 암환자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암환자에게 찾아온 우울증, 암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신건강의학과 김하린 교수님

 

암 만큼 무서운 암환자 우울증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죠. 이 말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몸에 병이 생기면 마음까지도 병들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오늘은 암 환자의 정신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하린입니다.

저는 현재 서울아산병원 암통합진료센터에서 암스트레스클리닉을 담당하고 있고, 암 환자들의 다양한 심리 문제와 우울증을 상담하고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암이 데려오는 우울증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 3명중 한 명이 평생에 한 번 암을 진단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암 환자가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죠. 최근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가 있는데요, 모든 암 환자를 통틀어서 4명 중 한 명은 치료가 꼭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이 동반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로 흔한 것인지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는데요, 암 환자는 암이 없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약 4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도 우울증이 생기기 쉽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가 자살율이 매우 높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 암 환자는 자살 생각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게 되는 일이 일반 사람들보다 2배 이상 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암 치료 과정 중에 우울증이 생겼을 경우 더욱 위험하겠지요.

암스트레스클리닉에서 상담을 받는 분들이 어떤 것을 가장 힘들어 하시는지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매년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3가지가 손에 꼽히는데요.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다가 방문하시기도 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이나 가족들이 권유를 해서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지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상을 괴롭히는 암환자 우울증

일단 삶이 굉장히 괴로워집니다.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원래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상 생활을 해내기가 버거워집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볼게요.

우울증이 있으면 잠을 편안하게 못 잘 뿐더러 식욕도 많이 떨어지고 매사 의욕이 없고 기운이 빠져 있습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하고 지쳐 있는 상태에요. 그런데 이런 증상들은 사실 암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암 때문에 몸이 힘든 상태인데 우울증이 같이 생겨버리면 훨씬 더 고통이 심해진다는 거죠.

또 하나는 통증이 훨씬 더 잘 느껴지고 더 오래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이 생긴 부위에 통증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항암제 같은 약물 부작용으로 신경통이 생기신 분들도 많아요.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호전되는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통증이 더 심하고 오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뭘 위해서 암을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치료를 받으나 안 받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의학적으로는 충분히 치료를 더 해야 하는 단계인데,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장기적으로는 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떨어져서 암의 예후가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몇 개월에 한번씩 정기 검사도 받고, 약도 잘 챙겨서 먹어야 하는데, 그런 관리가 잘 안되다 보니 벌어지는 일들이지요.

조금 더 강조해서 말씀 드리자면, 우울증을 치료하면 암 치료를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되니 치료 예후도 더 향상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암환자 우울증의 다양한 증상

우울하고 침체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서 “예민해졌다”, “화를 잘 낸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라는 식으로 우울증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우울한 감정보다는 짜증스러운 기분을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감정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꾸준히 지속되면서 점차 일상 생활을 방해하기 시작할 때 우울증을 꼭 생각해야 합니다.

암 환자들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때는 몸 상태나 치료 계획이 크게 바뀔 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시기들을 말씀드려 볼게요.

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처음 듣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릴 때가 많이 힘들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암에 대한 정보를 잔뜩 찾아보면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미리 고민을 하기도 하고요. 또 암 치료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이거나 기존의 치료 방법을 중단하고 새로운 치료를 시작할 때도 스트레스를 많이 느낍니다. 치료가 다 끝났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6개월 혹은 1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을 때마다, 처음에 암 진단 받을 때처럼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암이 재발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전이가 되었다고 하면 어쩌나, 새로운 암이 또 생겼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게 되죠. 이런 마음 상태를 걱정, 불안이라는 용어보다는 공포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어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면 마음 고생하던 것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거나, 해결이 안 되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받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서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개인의 몸 상태, 성격, 예후 등에 따라서 언제든지 우울증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거에요.

 

보호자에게도 힘든 시간

암 치료를 받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해요. 사실 보호자 입장에서는 환자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데,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한 상황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건강한 음식을 더 챙겨주려고 하거나, 억지로 산책을 데리고 나가게 하려고 하거나, 안 좋은 생활 습관을 고치도록 조언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 것은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어느 순간 잔소리로 느껴지면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보호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예요. 암 치료하는 과정이 길고 지칠 수 있으니까 좀 길게 보시고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환자는 병이 생기기 이전처럼 활기차게 지내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 자체가 보호자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역할입니다. 보호자 분들도 우울증이 심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전문가와 상담하시는 것을 권유 드려요.

 

나도 혹시 암환자 우울증?

우울증의 자가진단 방법은 인터넷 상으로 검색해보면 많이 나와요. 설문지 형태로 제작되어서 지난 1주 혹은 2주 동안에 본인의 증상을 점수로 체크하는 방식이 많습니다. 보통 10~20개 정도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본인의 심리 상태에 대한 질문을 눈 여겨 보실 필요가 있어요.

 

- 우울한 감정이나 짜증스러운 기분이 지속되는지

-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서,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고

- 과도한 죄책감이 들어서 암이 걸린 상황도 모두 내 탓으로만 느껴지는 상태

- 평소 좋아하는 것들, 취미활동, 대인관계가 줄어들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 자살하고 싶은 마음. 치료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 죽고 싶은 마음이 계속되는 것.

- 희망이 없고 더 좋아질 것이 없다고만 생각되는 것. 등이에요.

이러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고 있다면 꼭 우울증을 염두에 두셔야겠습니다.

서서히 시작된 우울증은 환자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변 가족들이 눈치를 채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친척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먼저 민감하게 느끼기도 해요. 주변에서 우울증을 걱정해준다면, 그 자체를 기분 나쁘게만 듣지 마시고 자기 자신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아 주셨으면 합니다.

 

암환자 우울증 이겨내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의 암 상태를 있는 그대로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암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은 별로 권장 드리지 않아요. 내가 무슨 암이 어디에 있어서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을 계획이다. 이런 정도는 명확하게 알고 계셔야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 예측이 되고 덜 불안하실 거에요.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글들 중에서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아예 잘못된 정보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의존하지는 마세요. 여기 저기서 얻게 된 정보들이 일관되지 않아서 판단하시기 어렵다면, 이 부분만큼은 담당 의사에게 솔직히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같습니다.

또 다른 조언으로는 암 환자가 된 것을 받아들이세요. 너무 쉬운 말 같고, 당연한 말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암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암 환자가 된 이후에 바뀐 삶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본래 건강했던 사람일수록, 활동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신체 변화가 크게 느껴지겠지요. 왜 암에 걸렸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누구의 잘못으로 생긴 병인지, 정말 다양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고민들은 최대한 빨리 마음 속에서 정리해주시는 것이 좋아요. 의외로 암을 빠르게 잘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서 행복하게 살고 계신 환자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문득 문득 예전에 느꼈던 고민과 의문점들이 다시 떠오른다 하더라도, 이러한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족들의 도움이나 친구의 관심이 때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감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한테 관심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관심이 줄어들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아픈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은데, 또 너무 건강한 사람 취급을 당하면 서럽다고 하시죠. 암 치료 과정은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는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여유도 보여주세요. 도움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솔직하게 조금 더 도와달라고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

암이라는 것은 참 무섭기도 하고 지치는 병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인생은 계속 진행중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암 환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우울증은 내 삶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많이 힘드실 때에는 주저하지 말고 꼭 치료를 받으시길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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