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입원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동에는 뇌손상 위치에 따라 팔, 다리를 못 쓰는 환자도 있고 의식이 없는 환자도 있다. 언어장애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삼킴 장애로 입으로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코에 작은 관을 넣어 유동식을 주입하는 환자도 있다. 갑자기 찾아오는 이러한 증상들은 한 가지 또는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에, 신경과 간호사들은 환자의 각기 다른 증상에 맞는 개별화된 간호를 해주며 환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두렵고 우울한 환자나 보호자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품는다.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유독 더 신경이 쓰이는 환자들이 있다. 나의 경우 말하고 소통하는 것,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말과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정말 절망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 못 하는 실어증 환자에게 정말 많은 애착을 가진다. '말과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했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이러한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힘들다, 두렵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대신 가까이 있는 보호자에게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며 짜증을 내거나 담당 간호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만난 60세 남자 환자는 뇌졸중으로 말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표현하지 못하게 된 환자는 말을 걸어도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안 나오고 소통이 어려우니 말을 하려는 노력조차 점점 안 하려고 했다. 어린 손녀가 “할아버지 힘내세요” 하며 밝은 목소리로 영상통화를 걸어올 때면 환자는 그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만 끄덕이곤 했다. 환자의 답답하고 무력한 마음이 담당 간호사였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환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표정이나 몸짓, 눈빛 등 비언어적 표현으로 환자가 하고 싶어 하는 표현들을 알아차렸다. 환자에게 목소리가 꼭 듣고 싶다며 “아아, 으으”라는 말이라도 꼭 말해보도록 했고, 환자의 언어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그림 카드를 가져가 몇 개를 맞추는지 확인하고, 말을 할 때 단어를 몇 개 사용하는지 문장을 말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평가하면서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주었다. 보호자에게도 어떻게 언어 자극을 주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몸이 안 움직이는 것보다 말을 못 하는 게 더 답답할 거란 생각으로 말 못 하는 환자에게 더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아아, 으으” 정도만 되며 고개만 끄덕였던 실어증 환자가 점차 단어를 더듬더듬 말하게 되고, 문장을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변화가 쌓여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가 되어 결국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아직은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없지만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퇴원을 하던 환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간호사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닐까?
매일 같은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때가 있다. 신경과 간호사들은 환자의 언어능력을 평가를 위한 그림카드와 좋은 글귀가 적혀 있는 종이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매 근무조마다 환자의 언어능력을 평가한다. 이렇게 매일 숨 쉬듯 해냈던 하루하루가 쌓여 환자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돕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하는 간호 행위 하나 하나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도 병실에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동료들을 본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자 저를 따라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제 말을 따라 해 보세요. 이 물건 이름을 맞춰보세요.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해볼까요?”
다소 무뚝뚝한 성격의 환자들이 "네" 또는 "아니오"라는 단답형 대답만 하면서 간호사의 관심을 귀찮아하더라도 끈질기게 물어보고 또 물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세심함을 가진 간호사도 있고, 사소하게나마 환자가 언어능력이 좋아졌을 때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두 손으로 박수를 쳐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밝고 명랑한 간호사도 있다. 간호사마다 따뜻한 표현, 공감하는 마음 등 모양만 다를 뿐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그렇게 환자들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랑을 배우며 매일 성장해 나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간호의 의미를 탐색하고 고민하며 내가 찾은 답대로 실천하며 우리의 수고가 누군가에게는 큰 지지가 되고 이겨낼 힘을 보탠다는 자부심으로 환자의 곁을 지켜나가고 싶다.
내과간호2팀
손다혜 대리
내과간호2팀 손다혜 대리는 2012년 입사해 현재 신경과 입원 환자를 치료하는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뇌졸중, 뇌전증 등 뇌혈관 및 뇌신경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 퇴원 후 건강하게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진심을 다해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깨달음을 통해 간호 업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