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36.5℃로 만드는 365일] 마지막 순간 2022.05.19

 

 


“힘드시겠지만,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을 수는 없을까요? 마지막이잖아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던 손과 부드러운 음성을 남기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가족분들의 감염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려우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도 알고 있어요. 아빠를 이제는 보지 못할텐데, 제가 걸려도 상관 없어요. 조금만 더 있게 해주세요.”

“아버님은 사랑하는 가족이 감염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거에요. 저희가 대신 마음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힘들다.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하며 담당 환자들의 임종을 많이 경험하였지만 마지막 순간, 맥박을 나타내는 초록색 그래프가 점점 느려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항상 가슴을 쓸쓸하게 한다. 간호사로 10년을 보냈다고 하면, ‘이제는 죽음도 무뎌지지 않았냐’라는 질문이 가장 싫었다. 아마 모든 의료진들이 그럴 것이다.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는 상황이 익숙해질 뿐이지 생명이 스러져가는 것은 언제나 아리다. 하지만 코로나 환자를 위한 격리병동에서 내가 경험한 마지막 순간은 몇 번이고 그 상황조차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족들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격리된 채 병실 안에서 가족과 집을 그리워했던 환자들의 슬픔을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나에게 코로나상황 이후 가장 어려운 간호업무는 임종간호와 사후간호였다. 처음 팬데믹 상황의 엄격한 규정과 지침이 있었을 때, 가족들은 병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단지 CCTV로 사망 선언을 보며 마지막 순간을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담아두었다. 임종(臨終)은 사전적 의미로 ‘마지막을 임하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실 때 곁을 지킨다’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장례식장에서는 입관을 살피고 슬픔을 나누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가 지정한 화장장에서 시신을 먼저 소각하고 나서야 환자는 봉인된 한 줌의 재로 가족들을 만나고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의사의 사망 선언이 끝나면 병원에서는 관할 보건소에 신고를 하고, 환자는 체액으로 인한 감염 전파의 위험성으로 인해 몸에 연결된 갖가지의 카테터와 튜브를 빼지도 못하고, 신체의 모든 구멍들을 거즈로 막은채 비닐백과 시신백에 이중으로 담겨졌다. 마지막 순간이 언제나 황망하고 스산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고귀하게 보내기 위해 정성을 다해 닦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괴롭히던 튜브와 카테터를 제거하고, 베게피를 말아 벌어진 턱밑을 고이고, 하얀 시트를 덮이며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하늘에서는 아프지마세요.’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국민들의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고, 전파가능성에 대한 근거가 정립되면서 엄격했던 규정과 지침은 많이 완화되었다. 현재는 가족들이 원하는 경우 의료진의 도움으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병실에서 임종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례의 방법도 방역조치를 엄수하는 경우 장례 후 화장을 하거나 장례의 방법을 꼭 화장만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튜브와 배액관, 카테터도 제거할 수 있으며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참관을 원하는 경우, 장례 업무 담당자의 도움아래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입관을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면회 할 수 있는 보호자의 수와 시간은 제한하고 있으며 비닐백과 시신백에 이중으로 담는 과정들을 유지하고 있다. 원하는 모든 가족들이 올 수 없기에 직계가족으로 임종면회를 시행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간 앞에서 국가와 병원의 감염관리 기준은 ‘잣대’로 여겨졌을 것이다. “직계 가족분들만, 그 중에서도 격리구역으로 들어가실 몇 분을 정하셔야 합니다.” “들어가시면 반드시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주시고 오랜시간 머무르실 수 없습니다. 의료진의 시간 안내를 지켜주세요.” 가족들은 원망과 한탄이 섞인 한숨을 뱉으며 눈물로 가득찬 황망한 하늘을 한번 보고 보호구역 착의실로 향한다.

 

면회가 끝나가는 시간, 나는 항상 가족분들께 “의식은 혼미하시지만 다 듣고 계세요. 사람의 감각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은 청각이래요. 지금도 누가 옆에 계신지 알고 계실 거에요.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많이 말씀해주세요.”라고 이야기드린다. 짧은 면회가 끝나면, 다시 4종보호구(가운, 마스크, 페이스쉴드, 장갑)를 착용하고 환자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가족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를 연결하여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음성을 담은 메시지나 음악들을 틀어드린다. 눈을 감고 있어도, 표현을 할 수 없어도 사랑과 감사는 울림을 타고 전해질 것이다.

 

모든 환자분들이 계획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기관삽관을 하며 기계호흡을 하고 중환자실에서 신대체요법(CRRT), 체외막산소공급(ECMO, 에크모)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있다. 급작스럽고 당황한 생각과 감정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만 하는 환자들도 있다.

 

보호구를 착용하고 허락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격리병동의 공간, 아마 우리는 마지막까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 옆에 남는 ‘사람’이기에 이 공간의 찰나를 지키는 것 같다. 찰나의 그 순간, 우리를 통해 가족들의 온기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혼자인 그 길이 무섭고 외롭지 않도록.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가족분들이 많이 사랑하셨을 거에요. 많이 감사하셨을 거에요. 걱정 마시고, 하늘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편안해지세요.”

 

응급간호팀
이민주 대리

응급간호팀 이민주 대리는 2011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10년간 암환자를 간호했습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환자 간호를 시작하면서 현재는 감염관리센터(CIC)에서 환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장면과 감정들을 뉴스룸 칼럼 <36.5℃ 사람의 체온이 만들어내는 365일 이야기>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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