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지금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은? 2022.05.16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신교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신교 교수는 환자를 냉정하게 끌고 가야 할 때와 달래며 동의를 얻어야 할 때를 구분해 주어진 진료 시간을 운영한다. “암은 불편한 점을 제거하는 치료와는 조금 달라요. 생사를 두고 얼마나 오래 치료하는지의 힘든 싸움이죠. 경험과 이해가 축적된 치료 운영이 필요한데 두 가지는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과 지금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걸 찾겠다는 각오죠.” 

 

시간을 버는 일

얼마 전 윤 교수의 목에서 임파선이 만져졌다. ‘암일지 몰라!’ 죽고 사는 일에 초연하다고 자신했던 마음은 작은 의심에도 크게 흔들렸다. ‘아이들이 입학하는 건 꼭 봐야 하는데!’ 기필코 닿아야 할 인생의 순간과 계획이 선명해지면서 남은 시간이 간절해졌다. 동시에 예전에 만난 20대 폐암 환자가 떠올랐다. 환자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윤 교수는 내심 남은 시간을 시험 준비에 쓰지 않기를 바랐다. 척추에 암이 전이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환자는 결국 목표를 이뤘다. “제가 잠시나마 환자 입장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환자는 삶의 한계를 알면서도 자신의 목표와 가능성을 이루고 싶었던 거예요. 저는 환자들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어야 하고요.”

 

4기 폐암 환자에게는 기대여명이 낙인처럼 찍힌다. 그러나 그건 평균 기간일 뿐이라고 윤 교수는 강조한다. 꾸준히 체력과 부작용을 관리하며 오래 유지하는 환자들을 봐왔다. 폐암은 많은 표적이 밝혀지고 있고 새로운 표적항암제들이 개발되고 있다. 또 면역항암제가 새로운 표준치료로 자리 잡으며 면역항암제에 실패한 환자들을 위한 신약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윤 교수는 면역항암제 반응을 예측하고 내성을 극복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가 전공의였을 때만 해도 폐암 환자는 1년 남짓 살았어요. 펠로우였을 때는 2년으로 늘었고요. 지금은 7년째 만나는 환자도 있어요. 멀리서 보면 의술의 발전이 느린 것 같아도 진료 현장에선 빠르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걸 체감해요. 지구가 빠르게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전혀 못 느끼는 것처럼요.”

 

나의 역할과 위안

항암 치료를 할 때 데이터에 기반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항암제를 선택한다. 성공과 실패 중 적중 확률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윤 교수도 노심초사하며 지켜본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우울감이 전염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해하는 환자 앞에서 의연하게 ‘앞으로가 더 중요해요. 저와 같이 해결해나가요’라며 상황을 추스른다. “제 역할에 대한 롤 모델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 부레옥잠을 가져가야 한다니까 퇴근한 아버지가 온 동네 화원을 뒤져 밤 11시에 구해 온 적이 있어요. 다음 날 반에서 부레옥잠을 가져온 사람은 저뿐이었죠. 수험생 때도 달이 예쁘게 뜨면 ‘신교야 같이 달 보자’라며 제 귀가를 기다리셨어요. 부모님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기에 완벽하지 않은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꽃길을 걷는 기분일 수 있었습니다. 환자들에게도 그런 버팀목이 필요할 거예요.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종양내과 특성상 여러 과와 협업하며 감동할 때가 많다. 지난한 암 치료를 이끌어야 하는 윤 교수에게는 든든한 파트너들이다. “폐 여기저기에 퍼진 종양을 표시해서 흉부외과에 보내면 아무리 까다로운 수술도 어떻게든 해내세요. 종양내과 의사로서 용감하게 수술하는 의사와 함께 일하는 것 이상의 복은 없을 거예요. 그때마다 생각해요. 제 부모님이 아프면 꼭 서울아산병원에 모시겠다고. 그만큼 우리 병원 의료진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환자 문화를 바꾸는 노력

진료는 3분 남짓이지만 그래서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한다. 미리 환자 상태를 검토해 미숙한 판단을 경계하며 사전에 신청해야 하는 항암제를 챙긴다. 이렇게 준비된 진료에서 막상 다른 맥락의 환자 질문으로 한정된 시간을 쓰게 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환자들이 헤매는 건 당연해요. 의학 용어도 어렵고 정제되지 않은 정보도 너무 많죠. 환자 문화를 바꿔 갈 필요를 느껴요. 그래서 환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SNS 콘텐츠로 만들고 있어요. 질병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면 보다 심도 있는 진료가 가능해질 거예요.” 환자의 일상을 떠올리며 챙기는 것들도 있다. 병명을 일일이 써주거나 소견서를 미리 꼼꼼히 준비하고, 환자가 들을 준비가 됐다고 판단되면 앞으로의 암 진행과 치료 과정을 알려준다. 호스피스 상담도 미리 받도록 안내해서 혹시 모를 상황에 환자와 보호자가 갑자기 큰 짐을 떠맡지 않도록 대처하고 있다.

 

환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언제까지 치료받아야 하나요?” 윤 교수는 그때마다 진심을 담아 답한다. “올해 벚꽃 잘 보셨죠? 조금 기다리면 예쁜 단풍이 보일 거예요. 곧 가족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계획이 기다리고요. 그때쯤이면 또 벚꽃이 보고 싶어질걸요?”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