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희망이의 희망 2022.08.08

 

 

엄마는 열 달간의 기다림 끝에 만난 딸의 이름을 ‘희망’이라 지었다. 무언가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희망은 딸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기도 했다. 희망이는 제 이름의 뜻을 알기도 전인 다섯 살에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다. 계속된 몸살과 갈증의 원인이었다. 긴 싸움이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진단을 듣는데 숨이 안 쉬어졌어요. 희망이가 잘못되면 나도 살 수 없다는 걸 몸으로 느낀 것처럼요. 희망이를 지키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어요.”

 

각자의 최선

밥상부터 모두 바꿨다. 엄마는 저염식 요리를 배우러 다니며 온 가족의 입맛을 희망이의 식단에 맞췄다. 엄격하게 운동시키고 모든 간식은 금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희망이가 엄마에게 배운 건 혼자 주사 놓는 법이었다. 당장은 안쓰러워도 아이를 살리려면 단호한 엄마가 되어야 했다. “희망아, 엄마가 주는 음식만 먹겠다는 약속 지키면 하루는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게 해줄게.” “학교에 가서도 시간 맞춰 주사 놓는 거 잊으면 안 돼. 할 수 있지?”

희망이는 엄마의 말을 잘 따랐지만 중·고등학교에 갈수록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었다. 잦은 조퇴로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고, 수학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무렵 엄마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힘겨운 이혼 절차를 밟으며 남편의 빚을 떠안았다. 그래도 세 딸을 지킨 것에 안도하며 밤낮없이 일했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 모녀는 서로의 어려운 심정을 넘겨짚을 뿐이었다. “힘들면 천천히 가도 되고, 꼭 어딘가에 닿지 않아도 돼! 감사하게 살자!”라면서 각자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우리를 기다린 위로

희망이는 큰 탈없이 대학까지 졸업했다. 외식조리학 전공을 살려 모녀는 브런치 카페를 차렸다. “엄마,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어!”라는 이야기에 엄마도 힘이 났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오래 가지 못했다. 희망이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저혈당으로 불시에 의식을 잃는 일이 잦아지면서 엄마는 모든 일을 접고 희망이의 곁을 지켰다. 중환자실에 들여보낼 때마다 마지막 인사가 될까 봐 겁이 났다. 주치의는 신·췌장 이식을 권유하며 서울아산병원을 소개했다. 

2019년 대전에서 올라와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했을 때 체계적인 시스템과 의료진의 속 깊은 배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희망아 이 병원이 널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췌장은 보통 1년 안에 기증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엄마의 신장을 같이 이식받기로 했다. 곧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 가족이 가진 돈을 모두 모았다. 예상 치료비에 한참 못 미쳤다. 고민 끝에 사회복지팀의 문을 두드렸다. “희망이 어머니, 여러 복지 제도가 있으니 저와 함께 준비하면 큰 무리 없이 수술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박종란 차장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의료 급여 수급권자라는 이유로 지역 병원에서 경험한 사회적 편견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사납게 싸웠고 뒤돌아서 울었다. 모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아산병원에서는 모든 상황을 듣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틀린 예감

1년이 넘도록 췌장 기증 연락이 오지 않았다. 희망이는 투석 후유증으로 계속 토하고 두통에 시달렸다. 그사이 담당 교수의 정년퇴직 소식까지 전해졌다. 엄마는 뭔가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함에 공황장애 증상까지 나타나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이 상태라면 딸에게 신장 이식을 해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엄마는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안 좋은 생각들을 떨쳐냈다. 그리고 새로운 담당의로 신·췌장이식외과 권현욱 교수를 만났다. 젊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쳤다. “희망이가 20년 넘게 버틴 게 대단하네요. 어머니도 많이 애쓰셨겠어요. 신·췌장을 같이 이식하면 좋겠지만 신장부터 급히 이식해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췌장 이식할 것을 고려해서 수술하겠습니다.” 희망이를 더 오랫동안 봐줄 수 있는 의사를 이식 수술 전에 만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2022년 5월 엄마의 수술이 먼저 진행됐다. 수술대 위에서 엄마는 희망이를 두 번째 출산하는 기분을 느꼈다. 마취에서 깨자마자 희망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간호사 선생님, 희망이의 수술은 잘되고 있는 거죠? 제가 하얀 꽃이 펼쳐진 길을 희망이와 손잡고 걷는 꿈을 꿨어요. 이거 좋은 꿈 맞죠?” “교수님과 희망이 모두 잘하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엄마의 신장을 이식 받은 희망이는 무균실을 거쳐 병실로 옮겨졌다. “저는 별로 안 아팠어요. 서울아산병원이어서 수술이 잘 된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에게 희망이는 희망을 나눠주었다.

 

매일의 희망

요즘 희망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하루하루를 만나는 중이다. “이렇게 개운한 아침은 생전 처음 느껴요. 어릴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몸이 처지고 어지러웠거든요. ‘건강한 사람들은 아침에 이런 기분이구나!’ 알게 됐어요.” 엄마는 그런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맙다. “희망이는 언제나 평온해요. ‘천사가 있다면 저 아이 같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제 아이를 살려준 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저도 같이 살린 거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췌장 이식이 남았지만 분명 잘 될 거예요.” 살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희망이 함께여서다. 30년 전, 엄마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기도 하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