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슬기로운 어린이 치과 생활] 우리 아이 영구치가 안 나와요 2022.08.11

 

서영이(가명)는 5학년 때 저를 찾아왔습니다. 유치가 빠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아서 치과에 갔더니 유치가 영구치를 가로막았다고 했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복잡합니다. 유치에 가로막힌 영구치는 어디든 자리를 비집고 나오고 싶은데 막히니 이상한 방향으로 서로 얽혀 있었습니다.

 

유치(유아치아, 젖니)는 수명이 명확한 치아입니다. 생후 6개월 정도가 되면 아기의 입 아래쪽에서 앞니 2개가 나오기 시작해 만 3세 정도 되면 20개의 유치가 다 나옵니다. 대개 아기들이 걷기 시작하는 시기가 돌 무렵이라고 하면 걷기 전부터 치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셈이죠. 유치 앞니는 6년 정도, 어금니는 10년 정도 입안에서 여러 역할을 하다 다음 치아인 영구치(성인치아, 간니)에게 자리를 비켜줍니다. 우리 몸에서 새로운 것으로 대체가 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상어의 치아가 평생 3만 번 정도 새로 난다고 하는 것에 비하면 단 한 번의 기회뿐인 인간의 치아는 아쉽기도 합니다. 유치는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음식을 씹고, 발음기관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유치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구치의 싹이 잘 자랄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영구치를 보호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새로운 치아가 올라오면 뿌리는 다 녹아버리고 치아 머리만 남아 조용히 빠져버립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빠진 유치에 대한 동화나 이야기가 있는 것은 그동안 수고한 유치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서영이처럼 유치가 고집스럽게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영구치가 유치 뿌리를 녹이지 못해 영구치가 방황하여 다른 쪽으로 방향이 휘거나 물주머니를 만드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가혹한 일을 당하는 쪽은 빠지지 못한 유치입니다. 인정사정없이 유치는 빠짐을 당합니다. 스스로 비키는 것보다 비켜짐을 당하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이때의 빠지지 못한 유치는 그동안의 노고와 상관없이 장애물 취급을 당합니다. 그래도 유치를 적절한 시기에 빼주면 방황하던 영구치는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유치가 너무 오래 가로막고 있으면, 영구치는 방황을 하다가 나갈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뽑히는 쪽은 영구치가 됩니다. 제대로 한 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뼈 안에 묻혀 있다가 뽑히는 영구치의 생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영구치가 유치를 녹일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영구치의 뿌리가 자라는 대략 3~4년 동안만입니다. 따라서 유치와 영구치가 공존하는 혼합치열기, 초등학교 기간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치과에 내원하여 영구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내려오고 있는지 엑스레이 등으로 체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구치가 유치 뿌리를 녹이며 나오는 메커니즘은 아직도 과학이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한 부분이지만 자신을 싸고 있던 싹을 깨뜨려 여러 세포의 작용으로 길을 만드는 매우 역동적인 과정임은 분명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싹은 영구치 자신이 스스로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치아의 싹을 대신 깨뜨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픕니다. 이가 빠지는 것도 아프고 새로운 이가 나는 것도 아픕니다. 변화는 아픕니다. 사춘기 시절 아이들이 부모 곁을 벗어나려고 할 때, 부모도 아이도 아픈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유치의 생을 보며 부모의 생을 떠올리게 됩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잘 자라서 자신의 역할을 할 때까지 품 안에서 잘 보호하고 있다가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싶을 때는 묵묵히 뒤로 물러나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가 너무 오래 고집스럽게 버티면 자식은 방황하다가 나가려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때 부모가 뽑히든, 자식이 뽑히든 두 가지 상황 모두 비극입니다.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또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지요. 주위를 둘러봅니다. 나의 완강함으로 휘어지고 방황하고 있는 어린 청춘이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치과
박소연 교수

치과 박소연 교수는 2018년 입사해 어린이병원 소아치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15년 차 치과의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아이와 부모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삶과 일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슬기로운 어린이 치과 생활> 책을 출간한 바 있으며, 네이버 블로그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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