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의대생의 독서일기]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2022.08.23

 

 

 

“선생님, 저희 아들은 평생 아팠어요.” 중년의 보호자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환자는 그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보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외래, 치료실, 외래, 치료실, 외래, 외래…’ 교수님께서 답하셨다.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산정특례 등록 기준에 충족되지 않습니다. 저도 최대한의 선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만 너무 큰 기대는 말아주세요.” 보호자의 갈 곳 잃은 눈빛은 외래 참관 중인 나에게까지 향했지만 나는 눈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가 나가자 교수님께서 한숨과 함께 말하셨다. “나는 이럴 때 의사라는 일에 회의가 든다. 나라고 이러고 싶은 게 아니야.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고 싶어. 너희도 나중에 이 자리에 앉아 보면 알게 될 거야.”

 

환자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미용적으로도 좋지 않아 정신적 고통을 주는 질환을 오랜 기간 앓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질환 증상을 완화하는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원하였다. 생물학적 제제는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한다. 따라서 산정특례가 적용되어 본인부담금을 줄여 주지 않으면 사용이 어렵다. 환자는 치료제에 대해 알아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등록 기준에 미달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교수님께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각자의 이야기와 고통을 안고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함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다.

 

의료는 고가의 서비스이다. 오랜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가 있고 의료제도 전반이 이 보험에 맞추어 돌아간다. 건강 보험료 지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의학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평원) 기준에 따라 진료한다는 뜻을 담은 ‘심평의학’이라는 자조 섞인 용어가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앞선 상황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심지어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임의비급여’라는 이름으로 처방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보건 관련 행정조직을 ‘탁상 행정을 일삼는 고리타분한 관료 집단’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 사회보험을 운용하는 이상 그 집행의 정당성을 살피는 조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안정적이고 저렴한 의료체계를 갖추는 데에 그들이 기여한 바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3분 진료,’ 임상과 간의 선호도 차이, 필수 의료 부족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학생의 눈으로 보아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즈음에 사회구조의 모순 속에서 이상향을 부르짖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게 되었다.

 

모어는 유토피아의 환자들이 받는 대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병이 치료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극심한 고통이 계속된다면 사제와 공무원이 찾아와서 더 이상 그런 고통을 당하지 말라고 재촉합니다. 그들은 환자에게 그들이 더 이상 삶의 의무를 다할 수 없으며 그 자신과 남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참으로 섬뜩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마저 읽어보자. ‘그러나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여 이런 조치를 취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그것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런 환자에 대한 간호를 중단하지도 않습니다.’ 필자는 유토피아의 이야기가 부러웠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안락사를 지지해서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환자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유토피아와 같은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사회의 가치관이, 다시 말해 그 구성원이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가 뚜렷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원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제도부터 만드는 것은 마차가 말을 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모두는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전제에 동의한다. 하지만 ‘돈’이 상징하는 의료 자원은 유한하고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조정하고 사용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언젠가 빈 곳간 앞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어려운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숙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유토피아’는 흔히 천국, 완벽한 사회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그 구성을 뜯어 보면 그리스어로 ‘없다’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를 조합한 것이다. 모어는 자신의 이상향을 그려 놓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고약한 이름을 붙인 셈이다. 완벽한 사회도, 완벽한 제도도 존재할 수 없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문제는 계속 있을 것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땜질식 처방을 넘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의료를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의료를 원하는지,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글을 마친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은 2017년에 입학해 현재 본과 4학년 입니다.
현재 다양한 의학 분야 활동을 바탕으로 참된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생으로, 서울아산병원의 학생의사로 보고 들은 것들이 한 권의 책과 함께 울리는 순간들을 담은 독서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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