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의대생의 독서일기]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2022.09.27

 

 

“Thank you so much for this month, Sungmin. I will never forget it.” 왓츠앱(WhatsApp)이라는 메신저 어플이 울렸다. 올해 교류도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자축하며 후배들과 격려를 주고받았다.

 

울산의대는 SCORE(Standing Committee On Research Exchange)에 가입되어 있다. SCORE는 IFMSA(International Federation of Medical Students’ Associations, 세계의대생협회연합)에서 주도하는 교류 프로그램으로 각국 의대생들이 서로의 국가를 한 달간 방문하여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문화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 현재 123개국의 의과대학 협회가 회원으로 있다.

 

2019년 여름, 처음으로 참여했던 SCORE에서 나의 역할은 CP(Contact Person)였다. CP는 울산의대에 방문하는 외국인 학생의 생활 전반을 챙기며 한국을 둘러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울산의대에서 제공하는 교류 지원금을 집행하며 다양한 체험을 돕는 역할이다. 당시에 퀘벡 학생 2명, 중국 학생 1명, 그리고 포르투갈 학생 1명의 CP로 활동하며 외국인 친구를 여럿 사귀었다.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나는 2021년 1월에 폴란드의 포즈난 대학교로 방문이 확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아쉽게 취소되었다.

 

SCORE는 3년간 중단되었다가 올해 여름부터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폴란드 학생 1 명과 카탈루냐 학생 1 명이 울산의대 미생물학교실에 방문했다. CP활동을 하면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고 추후 외국으로 교류 갈 때 가산점을 받아 선호 교류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했다. 나는 졸업을 앞두었기에 다른 나라를 방문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하기 위해 CP로 합류하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들과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울산의대와 서울아산병원을 소개하고 서울의 다양한 유적지를 방문하며 한국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외국인 학생들과의 교류는 내 자신과 한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외국인 학생들은 “왜 다른 연구실 선생님들은 내가 인사하면 놀라지?” “너희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일하지?” “거리에 쓰레기통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렵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외국인 학생들의 귀국길을 배웅하며 ‘문명의 충돌’을 떠올렸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베스트셀러 ‘문명의 충돌’에서 소련이 붕괴하며 세계 질서가 ‘문명’ 단위로 재편될 것이며, 같은 문명권 내의 나라들은 서로 뭉쳐서 다른 문명과 대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울러 ‘문명’은 국가 단위를 넘어 장기간 존속해왔기 때문에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다른 문명과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중국과 한국을 ‘중화권’으로 분류했다. 미묘한 한중 관계와 분명히 존재하는 반중 정서 그리고 헌팅턴이 다른 문명권으로 분류한 국가들과 한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보면 그의 예측에 다소 틀린 부분도 있는 듯하다.

 

다양한 문화권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CP활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 학생이 서울아산병원의 코로나19 규정을 잘못 숙지해 비행기 탑승 직전에 부랴부랴 PCR 검사를 받도록 안내한 일도 있었고 서울 시내 다른 학교와 공동으로 진행한 행사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상대 국가에 대한 잘못된 발언을 해 감정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헌팅턴이 말한 것처럼 대결 구도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에 대해 선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저술한 것은 1993년이었다. 그는 당시의 사회상으로부터 나름 최선의 예측을 했다고 생각한다. 국가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요즈음, 그의 이론이 다시 소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서구문명의 일원으로 다른 문명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을 거쳐 간 외국인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고 친구이지만 특히 3년 전 만났던 포르투갈 학생 비토르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에서의 한 달 동안 서로의 시선에 차이가 있음을 즐기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친구다. 그가 포르투갈로 간 뒤에도 화상 통화로 서로의 소식을 전했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달에는 2주 남짓의 여유를 얻어 포르투갈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미 결혼을 하고 신경과 전공의가 된 그 친구의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떤 흥미로운 만남이 우리를 기다릴지 기대가 될 따름이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은 2017년에 입학해 현재 본과 4학년 입니다.
현재 다양한 의학 분야 활동을 바탕으로 참된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생으로, 서울아산병원의 학생의사로 보고 들은 것들이 한 권의 책과 함께 울리는 순간들을 담은 독서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