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의대생의 독서일기]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2022.11.24

 

 

2022년 11월 17일.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났다. 수능일 아침은 ‘수능 한파’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춥게 느껴진다. 수능에 응시하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염원이 온갖 잡귀들을 불러모아 그렇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만큼 간절한 마음이 모이는 전국적인 행사임은 분명하다. 조정된 출근시간으로 한산해진 아침 거리를 걸으며 나의 수능일을 돌이켜보았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정확하게 6년 전인 2016년 11월 17일에 수능에 응시했다.

 

그날 아침도 어김없이 추웠다. 어머니께서 싸 주신 도시락에는 새우 튀김과 불고기가 들어 있었고 시험장까지는 아버지께서 태워 주셨다. 교문 앞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 두 캔을 사서 단숨에 들이키고는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고사실에 들어간 첫 수험생이었다. 책상 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종이를 접어 괴고 국어 지문을 꺼내 느긋하게 읽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참 어려웠던 수리 영역과 수능 시험 끝나고 나오는 길에 보았던 부모님의 미소가 기억에 남아있다.

 

저녁에 정답지가 올라온 직후 가채점을 마친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소신껏 선택했던 과학탐구 과목에서 부족한 성적을 거둔 탓이 컸다. 모의고사를 보며 기대했던 점수보다 크게 떨어져 당시에는 정말 아쉬웠다. 사흘 뒤에 치러진 논술고사가 아니었다면 울산의대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재수학원 입학을 위해 모아 둔 모의고사 성적표를 모두 버리고 울산으로 향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예과 1학년이었던 내가 울산대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돌아보니 폴의 이야기와 나의 수능 경험담의 공통점을 찾았다. 폴은 신경외과 수련 과정의 마지막을 앞둔 서른여섯 살에 폐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2년 남짓이었다. 갑작스럽게 삶의 끝을 마주하게 된 그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빛나는 것은 그의 태도이다. 그는 힘든 날을 힘들지 않다고 포장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것보다 나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라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는 계속 수술을 했고 딸을 낳았다. 마지막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다.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폴의 이야기를 나의 대입 이야기와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폴은 나쁜 결과를, 나는 좋은 결과를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와 폴 모두 예상하지 못한 사건 앞에 섰다는 공통점에 집중하고 싶다. 폴에게 병이 찾아온 것은 그가 특별히 잘못했거나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해서가 아니다. 그러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결국 원인에는 ‘불명’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다. 내가 울산의대에 들어온 데에는 학창시절의 노력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 해에 더 뛰어난 지원자가 있었거나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다면 내 자리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전적으로 개인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우리는 내일을 바꿀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니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자만하지 않고 나쁜 일 앞에서도 너무 자책하지 않으며 뚜벅뚜벅 걸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첫 번째 ‘의대생의 독서일기’에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 기회를 소중히 대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최선을 다해 그 약속을 지키려 했지만 매끄럽게 쓰이지 못한 글도 있었고 과한 기교를 부린 글도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나보다 잘 이해하고 명료하게 전달해 주신 서울아산병원 홍보팀과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칼럼과 함께 나의 학교 생활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내년부터는 학생의사가 아닌 인턴의사로 서울아산병원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 의사가 되기까지 여정을 함께해 주신 서울아산병원과 울산의대 가족들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윤성민 학생은 2017년에 입학해 현재 본과 4학년 입니다.
현재 다양한 의학 분야 활동을 바탕으로 참된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생으로, 서울아산병원의 학생의사로 보고 들은 것들이 한 권의 책과 함께 울리는 순간들을 담은 독서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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