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수술실에서 단단해진 의지와 자부심 2023.04.28

수술간호팀 석소진 차장

 

▲ 2009년 태국에서 학회 후 의료진과 기념촬영.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석소진 차장.
▲ 2012년 베트남에서 간이식 수술을 앞두고 현지 의료진과 기념 촬영. 가운데가 석소진 차장.

 

이식이 이뤄지는 수술실에는 드라마 같은 사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2002년부터 근무한 석소진 차장에게 간호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말 그대로 생과 사의 현장이었다. 힘든 만큼 더욱 단단해진 의지와 자부심에 대해 들어 보았다.

 

2002년 D로젯에 발령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얼마나 힘든 곳인지 알기 때문에 솔직히 울면서 갔습니다. 당시 간이식 수술은 20시간 이상 걸렸어요. 수술을 전담하면 아침에 출근해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다음 날까지 계속 수술실에 있어야 하는 거죠. 트레이닝된 몇 명의 간호사로는 교대할 여건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2002년 상반기에만 많은 간호사가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각 로젯에서 급히 경력자를 모으면서 저도 합류하게 된 거예요. 

이식 수술은 테크닉을 따라가기 힘들고 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전담할 수준까지 트레이닝 하는 데 5~6년이 걸려요. 교육 여건이 좋아진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나마 제게 다행이었던 건 간호사가 절실한 시기에 발령받아 짧은 시간에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수술실에서 생과 사를 만나며 느끼는 감정이 많을 것 같아요.

수술실에서 공식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수술은 뇌사자가 유일합니다. 그 상황을 몇 번 보면서 보호자에게 슬픈 감정을 이입하던 초창기에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됐어요. 밤새 뇌사자의 장기 적출을 하고 옆방으로 건너가 췌장 이식을 준비했던 날이에요.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뇌사자 가족에게 연락하는 걸 깜빡하고 아침에 퇴근한 거예요. 집에서 자다가 전화를 받았죠. 뇌사자를 영안실로 옮긴 줄 몰랐던 보호자가 병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셨대요. 가족을 잃은 상심이 컸을 텐데 제가 또 한 번 큰 상처를 드린 거죠.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지만 너무 죄송해서 계속 울기만 했어요. 병원에선 제게 잘못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필요한 시스템도 보완했고요. 그렇다고 제 죄책감을 덜 수는 없었어요. 지금도 간호사 보수 교육으로 강의 나갈 때마다 그날의 경험을 떠올려요.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것부터 챙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아 뇌사자를 만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파요. 3살도 안 된 뇌사자였는데 어머니가 여유분 기저귀를 하나 보냈더라고요. 곧 사망할 걸 알면서도 내 아이에게 부족한 건 없는지 챙기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수술 전부터 울컥했죠. 작은 몸에서 장기를 적출해야 하는 의료진 모두 같은 마음이었고요. 그날 퇴근해서 뇌사자와 같은 또래였던 제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막상 내 아이라면 장기를 기증할 자신이 없었어요.

 

‘아산 인 아시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셨죠?

우리 의술을 제3국에 전수하는 프로젝트로 매년 몽골, 베트남, 카타르 등에 갔습니다. 초창기에는 경력 있는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동참했어요. 한번은 몽골에 갔다가 쓰러지기도 했어요.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수술실도 매우 더웠거든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틈 없이 제한된 인원으로 어려운 수술을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악조건 속에서도 의료진 모두 사명감으로 임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레 끈끈한 팀워크도 생기더라고요. 

 

▲ 2016년 카타르에서 간이식 수술 후 기념촬영.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석소진 차장.
▲ 2021년 정동환 교수의 수술을 함께 하는 모습. 왼쪽이 석소진 차장.

 

이식 수술은 집도의와의 호흡이 중요하죠?

예민한 수술이라 업무 피로도나 요구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집도의는 새로운 간호사가 숙련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죠. 저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일 때까지 간이식·간담도외과 황신 교수님이 정말 무서웠어요. 수술실에서 교수님께 혼나고 자존심 상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회식 자리에서 용기를 냈죠. “제가 교수님 수술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는데 너무 서운해요.” 그렇게 마음을 터놓은 뒤로 교수님이 제게 뭐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웃음)

한번은 간이식·간담도외과 김기훈 교수님의 수술실에서 급한 호출을 받았어요. 환자 상황이 급박해지고 출혈이 심해서 손발 맞는 간호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교수님께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 고마웠다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수술실에 있을 때 가장 자부심을 느껴요. 

 

아직 남아있는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경력이 쌓일수록 저만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단히 애쓰고 있어요. 동시에 집도의와 후배 간호사 사이에서 중재 역할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요. 지난 3년간 코로나 때문에 소통의 기회가 적어진 게 아쉽기도 하고요. 후배 간호사들에게 더 공감하면서 의료진 간에 라포 쌓을 기회를 계속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제게 허락된 시간까지 오래 몸담아 온 이곳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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