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간호사,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저도 명복을 빌겠습니다’ 2023.05.26

 

 

자동문이 열리고 발을 내딛는 순간 낯설기만 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낯선 풍경은 내 오감을 잠식하고 이내 온몸으로 퍼져 마비가 되는 듯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인생에 단 한 번도 있을 수 없는 경험일 테지만, 누구든 한 번이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리라.

 

응급실은 그야말로 두려움의 공간이다. 체계적인 중증도 분류를 통해 중증도를 구별한다 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내원한 환자, 보호자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가장 중요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부분은 간호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들의 상태를 감지해야 하고, 곁에 있는 보호자의 마음 또한 살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나게 해야만 하는 곳, 그런 곳이 응급실이다. 내게도 그런 공간이 가져다주는 로망이 있었다.

 

18년 10월 즈음이었던가, 원하던 병원에 합격한 후 어느 부서에 지원할 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원한다고 해서 발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1~3순위를 정해 어필을 해야만 하였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답을 내릴 수 없었기에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듣기로 했다. 응급실을 강하게 원했던 나의 고민은 ‘타인의 감정에 쉽게 감응하고 동요되는 성향’이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밖에서는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자기 자신일지 몰라도, 응급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에 대해서 알게 되더라. 내가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되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거야. 무섭고 떨리고 혹시나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지···. 답답한 가슴만 부여잡고 있는 거지. 그러니 너 같은 사람이 오히려 필요하지 않겠니?’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였지만, 당연하게도 학생이던 당시엔 그 이야기의 무거움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그 무거움을 쌓아 올리는 데에는 많은 감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떨쳐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뭇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저 이야기는 조금씩 내 마음을 채워나갔다. 그 마음을 확인하게 된 건 응급실에 내원해 임종을 맞이하게 된 보호자분에게 ‘저도 명복을 빌겠습니다’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었을 때였다. 그 마음의 무게를 깨닫고 내뱉기까지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신규 간호사에게는 꽤나 견뎌내기 어려운 무게감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창 청춘의 나이에 평균 나이 60~70대의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을 담당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 일이 그저 고된 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하는 동료들과 버텨내다 보면 그 이상도 충분히 견뎌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렇게 ‘일단 들어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무게를 즐기게 되는 때가 온다.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나도 어느새 5년 차 응급실 간호사가 되었다. 두렵기만 하던 출근길은 이제는 나름 인생의 낙이 되었고 남에게 깊이 공감하는 마음은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는 데에 큰 무기가 되었다. 응급실은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은 로망이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수많은 학생들과 예비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응급실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누군가의 여정에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의 순수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신의 영역일 테지만 그렇기에 저는 그 신의 영역을 함께한다는 것이 영광과 축복임을 느낍니다.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공간이겠지만, 그 경험이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오롯이 다하는 우리네를 열렬히 응원한다.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은 2019년부터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고 건강하게 회복실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간호사를 비롯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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