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료진 에세이] 건강한 간호사가 환자를 건강하게 돕는다는 믿음 2023.06.14

서울아산병원 국정란 응급전문간호사

 

▲ 국정란 응급전문간호사는 1995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병원에서 얼마나 일하셨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본다. 하루는 길어도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가고, 1년은 길지만 10년은 짧게 느껴지듯이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30년이나 됐다. 스스로도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의 간호사들이 그렇듯 20대에 간호사가 되어 1995년 경력 간호사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했다. 30대에 대학원에 진학해 응급전문간호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개인적으로도 결혼, 출산, 가족 구성원의 변화를 겪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부서에서 최고령 간호사가 됐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간호사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하게도 건강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 나오는 법, 건강하지 않으면 병원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본인이 건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아픈 사람을 간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항상 “간호사는 체력이지!”라고 말하며 후배들에게 운동할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153일의 도전, 간호사 달력 프로젝트

응급실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후배 간호사들이 여럿 있다. 그중 10명의 남자 간호사들이 코로나19로 지친 의료진을 응원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근육질의 몸을 만들고 2022년 응급실 간호사 달력을 제작했다. 판매수익금 전액을 기부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간호사 달력 프로젝트를 계획하던 이들이 내게도 참여할 것을 제안해왔다. “이 나이에 무슨!”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문득 간호사가 된 지 30주년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30주년을 기념하면서 건강한 간호사의 이미지를 알리고 후배 간호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해 볼만 한 일이었다. 그렇게 2022년 4월, 153일의 몸 만들기 대장정이 시작됐다. 지난번에는 남자 간호사들만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나를 포함해 5명의 여자 간호사가 참여했다.

 

사실 꾸준히 마라톤과 자전거 라이딩 등 유산소 운동을 계속해 온 터라 운동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달력 프로젝트 팀장이 매일 정해준 근육운동 루틴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역시 식단관리가 문제였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빵과 떡인데, 근육을 만들려면 둘 다 먹지 말아야 했다. 많이 힘들었지만 목표가 뚜렷하니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함께 준비하는 간호사들이 조카 같은 젊은 친구들이라 시간이 갈수록 ‘엄마 같은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2022년 9월 바디 프로필을 찍던 날,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27%였던 체지방은 17%가 됐고, 체중은 53kg에서 46.5kg이 됐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가벼운 체중을 기록한 것이다. 꾸준한 근육운동으로 만든 선명한 복근이 사진에 담겨 달력으로 제작됐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판매되어 수익금 전액을 불우환자를 돕는 일에 기부할 수 있었다.

 

▲ 응급실에서 환자를 간호하는 국정란 응급전문간호사.

 

간호사의 행복과 건강이 환자의 건강으로

나는 후배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자신만의 방법을 꼭 찾기를 바란다.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 좋겠다. 내가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내 몸밖에 없으니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남을 움직여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히 쉬울 것이다. 주변 상황과 사람은 절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지만 내 생각과 행동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 남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훨씬 쉽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웃음치료를 배우면서부터였다. 생사의 기로에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간호하는 응급전문간호사로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많이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행복하면 환자가 건강합니다”라는 문구에 이끌려 웃음치료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긍정의 힘을 믿게 되었고, 내 주변을 바꾸는 것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고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나누고자 암환자들에게 웃음치료를 하며 간호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가 웃음교실에 나와 박수를 치며 크게 웃을 때는 그를 괴롭히던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 어떤 약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훌륭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환한 얼굴로 일어서는 환자들을 보며 처음으로 환자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웃음교실이 중단되어 아쉽지만 언젠가 반드시 다시 시작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의 소망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쭉 건강한 간호사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건강하면 환자들이 더 건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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