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MBTI가 뭐니?” 5학년 초등학생 아들이 친구와 대화할 때 건넨 말입니다. 서로의 MBTI 유형이 궁금했나 봅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화젯거리이고 심지어는 채용 면접 질문으로도 등장하는 MBTI. 왜 이렇게 궁금하고 재미있는 걸까요?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MBTI를 통해 ‘이런 점은 나와 같고, 이런 점은 나와 다르다’라는 것을 제시해 주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너’와의 상호작용에서 MBTI와 같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TA)입니다. 에릭 번(Eric Berne)이 창안한 TA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람 사이의 교류, 대화를 분석하는 심리학입니다. MBTI와 TA 모두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MBTI는 성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초점을 두는 반면, TA는 행동 양식, 타인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이해하고 더 나은 대인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그럼 이제 TA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TA에서는 개인의 자아 상태가 ▲부모 자아 상태(Parent Ego State; P) ▲어른 자아 상태(Adult Ego State; A) ▲어린이 자아 상태(Child Ego State; C)의 세 유형으로 나뉜다고 봅니다. ‘자아 상태’란 특정한 순간에 우리 성격의 일부를 드러내는 방법을 뜻합니다.
먼저, 부모 자아 상태(P)는 경험적인 규칙과 가치관, 행동 패턴 등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부모 자아 상태일 때 개인은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모방한 행동, 사고, 감정을 사용합니다. 속마음을 남에게 표현할 때,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 반응할 때 자신도 모르게 어렸을 때 부모님이 표현했던 방식 그대로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돌볼 때 나타나는 모성애적 감정과 태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권위적이고 통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부하의 실수에 호통을 칠 수 있습니다. 반면 수용적이고 너그러운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실수를 한 부하직원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크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큰아이가 동생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저건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인데?. 저건 내가 한 행동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깜짝 놀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부모 자아 상태는 이와 같이 부모나 양육자들에게 학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자아 상태(P)를 ‘가르침 받은 나’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의 자아가 부모 자아 상태(P)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을 하게 됩니다.
“안 돼! 당연히 ~해야지!” “~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너도 먹을 수 있는 거야.”
“거짓말은 나쁜 거야.” “너는 참 착하구나!”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이야!”
어른 자아 상태(A)는 분별력이 있는 상태로, 자각과 독자적 사고가 가능해지는 생후 10개월경부터 서서히 형성됩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자아 상태 전체를 통합하는 자아’로서,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적절히 반응하고 있을 때 어른 자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 자아 상태(A)에 있는 사람은 사실적 관찰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 정리, 통합하며 자신이 얻은 정보에 입각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합니다.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히 사고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나’라고도 하죠. 어른 자아 상태(A)에서는 모든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즉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가집니다.
어른 자아 상태(A)에 있을 때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그 통증의 성질은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 통증이 심하거나 약해질까? 얼마나 지속될까?”
“상대방의 진의가 무엇일지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자.” “구체적으로 말하면 ~란 말입니까?”
그 밖에 ‘실제적이다’ ‘예측가능하다’ ‘합리적이다’ ‘조작 가능하다’ 등의 표현 선호
마지막으로 어린이 자아 상태(C)는 감정과 충동적인 요소를 반영한 상태를 말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어린이였을 때와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있을 때 어린이 자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경험한 희로애락의 감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느끼는 나’라고도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파티에서 호탕하게 웃거나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깜짝 쇼를 마련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 바로 이 어린이 자아 상태(C)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이죠.
어린이 자아 상태(C)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을 하게 됩니다.
‘와!’와 같은 감탄사, ‘~을 갖고 싶다’ ‘~을 하고 싶다’ 등의 욕구,
좋다, 싫다, 슬프다, 섭섭하다, 기쁘다, 즐겁다, 신난다 등의 감정,
밝고 명랑한 모습,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모습 또는 힘없이 중얼거리거나 우물쭈물하는 모습 등
자, 이제 생활 속 사례에서 PAC를 살펴볼까요?
출근길에 운전 중인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신호도 차선도 잘 지키며 운전하고 있는 나의 자아는 현재 ‘A’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내 차 앞으로 끼어듭니다. 브레이크를 밟아 신속하게 대처해 충돌사고를 피한 나의 자아 역시 ‘A’입니다. 그러다 곧 고개를 저으며 입을 삐죽거리면서 “저런 운전자는 도로에 나오지도 못하게 해야 해!”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운전하실 때 버릇없는 운전자들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을 자주 봐 왔기 때문이죠. 내가 습득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나의 자아 상태는 ‘P’인 것입니다.
이런, 차가 막혀 지각을 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 늦어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죠. 어른에게 혼나는 것이 참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나의 자아는 ‘C’가 됩니다. 다행히 안전하게 도착했고 지각은 면했습니다. 침착하게 업무를 시작하는 나의 자아는 다시 ‘A’가 됩니다.
퇴근 후 동료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술 한잔을 곁들입니다. 한껏 흥이 올라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나의 자아는 ‘C’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마친 뒤 누워 내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는 나의 자아는 다시 ‘A’가 됩니다.
이렇듯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아 상태는 하루 사이에도 P-A-C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PAC는 자아 상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섯 가지로 더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아 상태의 기능 모델이라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 자아 상태의 기능 모델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교류 분석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수술간호팀
편희연 대리
수술간호팀 편희연 대리는 2007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현재 동관 마취회복실에서 수술 중 마취 및 수술 후 회복 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환자, 직장 동료들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선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고 교류분석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교류분석상담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분들, 더 편안한 ‘나’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