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마지막 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2023.07.03

응급간호팀 김나영 대리

 

 

어느 겨울, 응급실에 70대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유방암 말기였으며 모든 활력징후가 불안정해 소생구역으로 바로 입실했다. 옆에는 짐을 한 보따리 가져 온 남편이 있었다. “이렇게 짐을 많이 가져오셨어요?”라고 물어보니 “보통 응급실에 오면 집으로 못 돌아가고 입원하게 되니까 다 가지고 왔어요”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가방에는 분홍색 담요, 털장갑, 털모자, 핫팩 등 아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물품들이 들어있었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소생 처치에도 환자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렸고, 환자에게 행하는 침습적인 처치들이 오히려 환자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는 이해한다는 반응과 함께 연명의료에 대해 거절 의사를 표했다.

조금 뒤 ‘땡땡땡’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보니 맥박 수는 50대에서 20대로 떨어졌고 헐떡거리는 듯한 임종기 호흡을 보이며 강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었다. ‘아… 곧 돌아가시겠구나.’ 그 순간 대학원 수업에서 봤던 임종간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남자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하려는 심리가 있어 임종 시에도 아무 말을 못하고 있다가 막상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내며 오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보호자에게 “어머니가 오늘 많이 힘들어 하시네요. 가장 오래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해요. 어머니가 무섭지 않게 좋은 말씀, 하고 싶었던 말씀 많이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보호자는 감정을 억누르다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조금만 더 살다가 나랑 같이 가면 좀 좋아… 뭐가 그리 급하다고 가려 해. 꼭 가야 되는 거면 걱정 말고 가. 자식들도 다 잘 키웠고 인생 정말 멋지게 잘 살았다.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해…” 계속 사랑한다고 외치며 얼굴 이리저리 입맞춤을 했다. 곧 심전도는 무수축을 보였고 나는 보호자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드렸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보호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가 눈을 떴다는 것이다. 바로 가서 환자를 확인하며 물었다. “아까 남편분이 했던 말들 기억나세요?” 환자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사랑해”라고 답했다. 보호자가 마지막으로 전한 따뜻한 말들이 잘 전달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1시간 뒤 환자는 운명을 달리했고 보호자는 응급실에서 퇴실하기 전 내게 찾아와 말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소. 와이프가 내 말 듣고 씩씩하게 잘 갔겠지?” 찰나의 순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게 물꼬를 터주는 것이 진정한 응급실에서의 임종간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많은 환자, 보호자를 만났고 “엄마, 다음 생에는 내가 받은 사랑 다 보답할 수 있게 꼭 내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너무 아팠다 내 아들. 엄마 욕심에 힘든 치료 견뎌줘서 고마워. 이제 그만 아프자… 사랑해.” 등 짧은 순간에 오고 가는 말에는 미안함, 고마움, 사랑과 같은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 순간이 오면 보호자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을 되새겨 본다. “다 듣고 계세요. 전하고 싶은 말은 참지 말고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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