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간호사,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지나가는 감기처럼 2023.07.05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가 하는 자기소개의 첫 문장이다. 외면과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어색함 때문일 수도,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를 직접 보는 것에 대한 놀라움일 수도 있지만, 저 문장을 시작으로 각자의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한 차례 지나간다. 그리곤 이내 누군가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응급실에서 일하시면 술 취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힘드시겠어요.” 

 

 글쎄, 음주를 즐기는 시간대에는 비율상으로 내원하는 환자 수가 증가하긴 하지만 24시간 동안 내원하는 환자 비율로 보면 큰 비율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5년 남짓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본 환자는 대부분 암 환자였다. 응급실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생각만큼 외상환자들이 넘쳐나지는 않는다. 주취 환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시사철 시간대를 불문하고 상시 긴장하고 주의가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그건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경계선 상에서 내원하게 된다.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가한, 혹은 가할 수 있는 상태로. 

 

 일한지 2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그날도 마음이 위태로운 한 분이 오셨었다. 상습적으로 아버지를 폭행한 에피소드가 있고 조현병을 진단받은 병력이 있었다. 보호자로 같이 내원한 아버지는 겁에 질려 옆에 있지 못하는 상태였고 강제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엔 하릴없이 환자와 타인의 안전을 위해 신경 안정제를 투약하게 된다. 투약을 위해 환자에게 다가갔지만 환자는 “내가 왜 입원을 해야 하는데! 아픈데 하나 없는데 왜 내가 입원해야 해!”라며 입원을 거부하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투약 또한 불가능한 상태였다. “환자분, 치료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에 아픈 곳이 없는데 어딜 치료해야 하냐는 반문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곤 다음의 굉장히 짧은 대화가 오갔고 그 환자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조용히 투약과 함께 입원했다.

 

“마음 치료가 필요하니까요.”


“아, 마음 치료? 그거 좋네, 그래요 합시다. 주사 맞을게요.”

 

 드라마 같은 연출을 의도한 것도, 감정에 호소하여 연기를 자행한 것도 아니었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여느 환자에게나 사용하는 동일한 어투와 어조였다. 무엇이 그 환자에게 닿았던 걸까. 내가 건넨 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기보단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 있는 말이 그에겐 특별했던 것 같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매우 대단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됐던 영상이 있다. 환자의 다리에 정맥주사를 주입하려는 간호사에게 환자는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고 ’공습경보, 공습경보!‘라는 상황에 적절치 못한 단어를 외치는 영상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간호사라는 직업은 정말 극한 직업이다’, ‘얼마나 술 취했으면 저런 말을···’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공습경보를 외쳤던 그 환자의 외침에도 그만의 사연이 담겨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영상에 대한 과장된 해석을 하기 보단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 이면엔 저마다의 사연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일 테니 말이다. 그들에겐 그것이 진짜 세상이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알려주는 것은 모두 허상이자 거짓이다. 그에겐 그것이 증상이고 병원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목적일 테니 말이다. 

 

 응급실의 3대 질환은 급성 심근경색, 급성 뇌졸중, 다발성 외상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사가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면 정신질환 또한 결코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으리라. 사람의 골든타임을 쥐고 있는 것은 환자 스스로이며, 타이머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시한폭탄일 테니. 그러니 우리는 그 제한 시간을 적극적으로 헤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은 다치기도 쉽고 닫히기도 쉽다. 그러니 우리는 시기를 불문하고 언제나 모두 아픈 상태이고 아플 수 있다. 나도, 옆의 동료도, 그 누구라도. 우리가 헤아려야 하는 모든 CC(Chief Complaint, 주 호소)의 앞선에는 다른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돌발 행동을 이해한다. 그것은 그들의 증상이자 주 호소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우울한 감정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지나가는 감기처럼.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은 2019년부터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고 건강하게 회복실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간호사를 비롯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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