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갈등을 겪기도 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면서 긍정적인 인간관계의 기술을 배워나갑니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인격적인 성숙도가 낮고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본인 스스로도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면역체계도 면역 발달 과정에서 다양한 면역반응을 경험하지 못하면 면역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갓난아기까지 온갖 균과 기생충, 바이러스, 곰팡이 등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면역체계는 매우 호된 성숙 과정을 거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기들은 다양한 균들을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 면역 성숙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안전한 물질도 미성숙한 면역체계가 쉽게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며 염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이 바로 ‘알레르기’입니다.
흔희 주변에서 "나 알레르기 있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알레르기는 보통 가려움증, 두드러기, 콧물, 기침, 복통, 소화불량, 설사 등 다양한 상황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므로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려운 표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칼럼의 첫 번째 글을‘알레르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의 몸에 어떤 강력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면역세포들은 이 바이러스를 발견하자마자 “적이 침입했다! 총공격!”이라고 외칩니다. 면역세포들은 이러한 적들을 제거하는 과정인 염증을 일으킵니다. 면역세포들의 공격으로 감염 부위는 붉어지고 부어오르며 통증은 물론 호흡기 관련 증상인 기침, 가래, 콧물 등도 나타납니다.
공기 중에 꽃가루 같은 인체에 무해한 물질이라면 코 점막에 도달하더라도 면역세포들은 “전혀 문제없는 녀석이네요. 지나가세요~!" 하며 반응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염증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 몸에 들어오는 수많은 물질들을 면역세포들이 검열하여 무해한 물질이라면 “통과!”를 외치며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정한 면역 체질이 있거나 면역성숙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면역세포들이 꽃가루와 같은 무해한 외부 물질을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적’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꽃가루가 들어올 때마다 면역세포들은 매번 나쁜 균이 침투한 것으로 오해하여 꽃가루를 제거하기 위해 총공격을 하게 되고 염증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과잉진압 상황을 ‘과민 면역반응’이라 하고, 그 결과가 알레르기 질환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무해한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동물 털과 같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질을 흡입한 경우, 호흡기계통의 면역체계가 오해하여 염증을 일으키면 비염,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발생합니다. 인체 무해한 음식을 착각하여 과잉대응하면 식품알레르기가 발생합니다.
알레르기 질환은 선진국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토피피부염의 경우 예전에는 발생 빈도가 낮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구 선진국에서는 개발도상국에 비해 천식, 비염, 아토피피부염과 같은 알레르기 환자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균들을 만나지 못해 건강한 면역이 성숙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각종 미생물은 인체 면역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장내 세균, 곰팡이, 기생충, 그리고 피부 세균은 우리 면역체계의 건강한 성숙과 조절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밭의 흙이나 비료, 동물 분뇨와 같은 다양한 물질을 만지며 많은 종류의 미생물을 손과 몸에 묻힌 채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엄마의 피부, 장과 질에 다양한 균들이 생기게 되고, 임신 중인 자궁 내 태아의 초기 면역체계 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아기가 출생할 때 엄마의 산도를 지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균들을 입으로 먹거나 폐로 흡입하고 피부 전체에 묻히며 태어나는데 이런 과정은 신생아 평생 면역체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현대의 부모들은 피부에서 균이 자라지 않도록 항상 피부를 비누로 닦고 질도 항균제로 세척하며 집안도 항균 화학물질로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아이가 밖에서 무언가를 만질 때마다 더러운 것으로 여겨 만지지 못하게 하며, 조금만 온도가 내려가도 감기 걸린다고 나가서 놀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만나지 못해 면역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하고 결국 다양한 알레르기 질환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균 세정제 사용을 자제하고, 신생아 용품도 지나치게 소독하지 않으며, 좋은 균들이 장에 서식할 수 있도록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균이 함유된 신선한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임신 전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릴 때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도한 보호를 피해야 합니다.
과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사적인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신생아부터 몸을 비누로 닦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 컸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당연한 듯 샴푸만 하고 몸은 물로만 닦습니다. 아기 때부터 여러 종류의 유산균을 먹였고 자연의 흙 만지고 노는 걸 권장해 주었습니다. 시원하게 재우고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 놀도록 했습니다. 알레르기 질환을 많이 가진 아빠 밑에서 현재까지 알레르기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나름 제 노력의 결과일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임신 중이거나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오늘부터는 다양한 발효식품을 섭취하고 자연의 다양한 균이 많이 존재하는 숲을 가족과 함께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촉촉한 흙과 풀도 만져보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
2살 때부터 천식, 비염, 아토피피부염, 약물알레르기 등을 앓기 시작해서 내 병은 내가 치료하겠다는 마음으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2012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에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알레르기 및 아토피 질환의 예방과 치료 등 다양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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