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 띠리리리…. 반가운 친구의 전화입니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는 이내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아니 글쎄, 우리 팀장님은 정말 막무가내야. 불통이야 불통!
‘안 돼요’ ‘못 해요’는 팀장님 앞에서 있을 수가 없어!”
한참을 이야기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회사 생활의 고충이 절절하게 전해져 옵니다. 세상이 아주 빠르게 바뀌어 간다고 하지만 이런 ‘독불장군’ 상사는 여전히 어디든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제 친구는 참을성이 강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이나 거절은 절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늘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른바 ‘예스맨’입니다. 이렇게나 착한 친구에게도 고민은 있습니다. 자신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속 시원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싶답니다. 때론 당당하게 “아니요!”라고 외치기도 하고요. 계속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스스로가 너무 싫고, 스트레스가 되어 우울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를 ‘착한 아이 증후군’ 또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 부릅니다. 교류분석에서는 독불장군 상사를 ‘CP 주도형’으로, 착한 아이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제 친구를 ‘AC 주도형’으로 봅니다.
개인의 자아 상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P(부모 자아 상태) ▲A(어른 자아 상태) ▲C(어린이 자아 상태)의 세 유형으로 나뉜다는 것을 1편에서 이야기했죠. 이중 P와 C는 기능에 따라 더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P는 ▲CP(Critical Parent: 통제적인 어버이)와 ▲NP(Nurturing Parent: 양육적인 어버이)로, C는 ▲AC(Adapted Child: 순응하는 어린이)와 ▲FC(Free Child: 자유로운 어린이)로 나뉩니다. A까지 포함해 총 5개의 자아 상태로 나뉠 수 있는 것이죠. 이를 자아 상태의 기능 모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5개의 자아 상태를 모두 쓰며 살아가지만 편하고 익숙한 자아 상태에 자주 머물게 됩니다. 어떤 자아 상태도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각각의 긍정적, 부정적 기능은 존재합니다.
CP(통제적인 어버이) 주도형인 경우 독불장군과 같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지배적이고 명령하며 질책하는 경향이 있고, 양보하기보다는 고집을 부릴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CP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할 때를 맞닥뜨릴 수도 있고, 규칙을 아주 엄격하게 지켜야만 하는 상황도 있으니까요. 신념에 따라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NP(양육적인 어버이) 주도형인 사람은 따뜻한 부모님과 같이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친절, 관용, 용서, 칭찬, 공감의 모습을 잘 보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과잉보호로 이어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이른바 ‘마마보이’ ‘마마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신입직원의 일처리가 느리다는 이유로 모든 일을 혼자서 하려는 선배가 있다면, 신입직원은 직접 부딪히며 일을 배울 기회를 잃고 더 발전하지 못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형적인 NP의 부정적 사례입니다.
AC(순응하는 어린이) 상태인 경우 양육자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하고, 양육자의 기대와 생각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타협하기 때문에 감정 표현에 서툴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자발성이 결여됩니다. CP와 마찬가지로, AC라고 해서 부정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양육과 지도에 순응하는 자녀, 어떤가요? 참 좋겠죠? 분위기와 상황을 파악해 적절한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을 챙기며 주변 사람들과의 화합을 위해 애씁니다. 순종적이고 참을성이 있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FC(자유로운 어린이) 상태는 자아 상태 중에서 가장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형입니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합니다.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 때문에 밝고 명랑하며 천진난만합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경솔하거나 책임감이 없는 모습으로 비칠 우려가 있습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고 합니다. 하나의 자아 상태가 높으면 이에 맞게 다른 자아 상태가 내려감으로써 총량이 유지되고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즉 CP가 높으면 NP가 낮을 수밖에 없고, FC가 높다면 AC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리적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P 주도형인 사람이라면 NP를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공감 능력을 키우고 격려와 칭찬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말해보는 것입니다. ▲NP 주도형인 경우 CP가 낮을 수 있기 때문에 원칙과 규정을 잘 지키도록 지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볼 수 있습니다. ▲AC가 높고 FC가 낮은 AC 주도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아니요”라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FC 주도형인 경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실천해 보세요.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진지한 모습으로 책임감 있게 임무를 완수하려 노력한다면 AC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아 상태에 주로 머물고 있나요? 5가지의 자아 상태를 모두 갖고 있다 하더라도 주로 나타나는 자아 상태가 있을 겁니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자아 상태가 무엇인지 생각날 텐데요. 어떻게 하면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나 자신이 변하기’입니다.
CP 주도형인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해주세요. NP 주도형인 사람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공감하고 격려해 보세요. FC 주도형인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면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해주고, 기분을 알아주고 지지해 주며 지속적으로 칭찬을 하며 함께 즐겨보세요. AC 주도형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고,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A 주도형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존중받는 느낌이 들게끔 해주며, 일에 대한 능력을 믿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자아 상태의 기능 모델을 살펴봤습니다. 익숙지 않은 용어 때문에 어렵진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떤 자아가 높은지, 상대방은 어떤 자아가 높은지 관심 있게 살펴보세요. 나를 잘 알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다면(I’m OK!)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You’re OK!).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교류분석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수술간호팀
편희연 대리
수술간호팀 편희연 대리는 2007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현재 동관 마취회복실에서 수술 중 마취 및 수술 후 회복 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환자, 직장 동료들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선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고 교류분석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교류분석상담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분들, 더 편안한 ‘나’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