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은 되겠지만 너무 위험한데….’ 기도가 종양으로 눌린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 가래나 출혈이 생겨 덜컥 기도가 막히면 숨을 쉬지 못해 사망까지 갈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고서 지원준 교수는 경직성 기관지 내시경 시술에 들어갔다. “시술을 무사히 마치면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야 할 동기를 부여받습니다. 흔치 않지만 환자를 잃으면 시술자로서 경각심을 갖게 되고요. 제 시술이 도움 될 환자를 선별하는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가르침을 주는 건 역시 환자분들이죠.”
오랜 고민과 빠른 실행
고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를 이끌 신약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생물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생물학과 유전학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의대에서 접한 임상의학은 재미를 배가시켰다. 환자들의 불편한 증상을 보고 문제의 시작과 진행,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추리와 같았다. 본과 3학년부턴 방학 때마다 서브 인턴으로 병원을 경험하고, 인턴 때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어 62병동 주치의를 맡으면서 환자 보는 일에 확신을 더했다. 전공도 일찌감치 호흡기내과로 정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생각이 많은 편인데 그때그때 필요한 조언과 제안을 해주는 훌륭한 멘토 선생님들을 만났거든요. 덕분에 중요한 결정을 후딱 내리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재미와 확신을 얻을 수 있었죠.”
지 교수는 폐암 진단과 기관지 내시경 중재 시술을 주로 맡고 있다. 폐암은 말기에 발견될 확률이 높고 초기라 해도 5년 생존율이 다른 암보다 떨어진다. 다행인 건 진단법과 치료법이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여서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다음 치료로 무사히 연결되거나 차츰 회복된 환자들이 감사 인사를 전할 때면 마치 그 순간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기쁜 마음이다.
생명의 무게를 견디며
폐암이 의심되는 60대 환자가 입원했을 때다. 주말 사이에 갑작스레 숨이 차 MET(의료비상팀)가 출동했고 종양이 기도를 막아 폐의 절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다. 인공호흡기로는 유지가 어려워 연명의료장치인 인공심폐기를 적용해야 했다. 지 교수는 환자가 비교적 젊고 기관지주변부 종양을 제외하면 폐가 건강하다는 점에 희망을 두고 환자 가족과 충분한 상의 끝에 경직성 기관지 내시경 시술에 들어갔다. 환자는 시술 다음 날 성공적으로 인공심폐기와 호흡기를 떼고 3일 만에 일반 병실로 걸어서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할 뻔한 환자와 가족들은 3년째 외래에 올 때마다 감사 인사를 하세요. 저도 물론 기쁘죠. 댁이 꽤 먼 곳이라 이제 저와는 가끔만 보자고 매번 인사를 드리는데 소용 없으세요.(웃음)”
2018년 경직성 내시경 시술을 시작할 당시 스트레스가 심했다. 긴장과 부담은 물론이고 손대기만 해도 출혈을 걷잡을 수 없던 환자의 임종 선언을 할 때는 ‘내가 환자의 사망을 앞당긴 건 아닐까?’ 죄책감이 먼저 들었다. 오히려 환자 가족이 위험을 무릅쓴 그의 노력을 알아주었다. “불과 제가 인턴 때만 해도 같은 증상의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다고 해요. 이제는 제가 그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술을 결정할 때 원칙이 있다. 환자가 시술을 통해 편하게 호흡할 수 있고, 다음 치료로 연결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가 시술의 위험성과 이득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해야 한다. 단지 기술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덤비는 것을 지 교수는 가장 경계하고 있다. “한해 40여 건의 시술을 진행하는데 매년 케이스가 늘어갑니다. 고위험 시술이다 보니 여러 진료과 교수님들과 항상 긴밀히 상의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위험한 순간들을 잘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꿈에 다가가는 시도와 도전들
그는 매달 60~80명의 폐암 신환을 만난다. 보통 폐에 바늘을 삽입하는 경피적 조직검사를 진행하지만 접근이 어렵거나 합병증의 위험이 높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서울아산병원은 전자기유도 기관지 내시경과 방사형 초음파 내시경을 갖추고, 말초 폐병변 진단에 있어 국내에서 가능한 모든 기관지 내시경 진단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직은 말초 폐 영역에서 기관지 내시경이 진단용으로만 쓰이지만 지 교수는 치료 목적의 기구 개발을 위해 국책 과제를 진행 중이다. “진료실에서 시작된 연구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다양한 임상연구로 고등학생 때부터 꿈꿨던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의술 도입을 간접적으로 펼치는 거고요. 중재 기관지내시경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자 목표죠. 저를 찾아온 환자분들의 숨이 탁 트이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