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간호사,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간호사가 되기 전의 나로 2023.08.07

 

 

입사해서 온전한 1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른 이들이 ‘적응하시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라는 질문을 할 때에 보통은 1년의 시간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업무 능력을 기르는 데에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뿐 ‘간호사’로서 적응을 하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 시간 속에는 굉장히 많은 시련과 고난이 따랐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간호사로 인지하기까지의 가장 큰 시련은 환자 보호자 ‘응대’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간호사의 업무는 ‘투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생각보다 ‘응대’ 업무를 훨씬 더 많이 하게 된다. 오히려 응대에 밀려 투약을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응대의 내용이 우리 간호사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면 기꺼이 해내고 말테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병실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일, 진료 절차를 생략하는 일, 결과를 빠르게 얻어내는 일 등 사실상 간호사가 아니어도 쉬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응대라는 일이 참 어려웠다.

 

1, 2년 차 때를 돌아보면 언성을 높였던 일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고, 그들의 요구나 불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했었다. 생각해 보면 진짜 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온전히 나 스스로 만들어낸 화 말이다. 야금야금 나의 정신 상태를 갉아먹던 화난 감정은 마침내 사건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의 담당 환자도 아니었던 여느 보호자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기계적인 대답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뜸 돌아오는 보호자의 말을 그러했다.

 

“저 그걸 물어보려던 것이 아닌데요?”

 

아차 싶긴 했지만, 내 응대가 잘못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질문에 다시금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 보호자는 내 이름을 알아갔고 (대개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 굉장한 죄책감에 사로잡혔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분명 살아오면서 상호 간의 예절을 중시하고 상식선 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난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져 온 건지 스스로가 정말 싫어졌다. 가까스로 죄책감에 벗어나 다짐했다. ‘원래의 나처럼 행동하자. 간호사가 되기 전 김윤섭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로 친절하다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은 칭찬 피드백을 받았다. 그저 원래의 나처럼 행동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사람으로서의 나도, 간호사로서의 나도 완전히 바뀌었던 것 같다. 환자와 보호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친절하기 위한 과도한 움직임이나 과열된 언어보다는, 나도 그들과 같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예절은 지적 수준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그것이 타고난 면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친절한 간호사는 ‘사람다운 면’을 타고난 유능한 간호사가 아닐까 싶다.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은 2019년부터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고 건강하게 회복실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간호사를 비롯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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