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입사 직후 가장 떨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부서 배치를 받는 날이었다. 희망부서를 적어내라는 말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1, 2, 3순위 모두 ‘신생아중환자실’을 적었고, 간절히 원하던 곳에서 벌써 7년째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계속 그곳에서 일하고 싶나요?” 내 대답은 당연히 ‘YES’였지만 막상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니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 내가 왜 이곳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머무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된 것 같았다.
Nursing is an Art
신생아중환자실은 ‘인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예술 행위’라는 간호의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아기의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드레싱 방법과 성인도 견디기 힘든 여러 의료행위를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방법 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제한적인 상황과 공간에서 최선의 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기들은 “아파요” “불편해요” 등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아의 치료 과정과 계획에 간호사의 의견과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24시간 아기들의 곁을 지키면서 돌보기 때문에 활력징후에도 나타나지 않는 예민한 상태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아기의 활동성이 떨어져 보여요” “원래 잘 우는 아기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잠만 계속 자요” 등 우리의 목소리가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축복의 기쁨
신생아중환자실이기에 우리만이 특별하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탄생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한 지 어느덧 100일이 되면 전날부터 분주하다. 담당 간호사가 100일 축하 장식을 침대에 걸어두면 어느새 아기를 축복하고 응원하는 편지가 침대맡에 가득 채워진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되어 있지만 이날은 100일 특별면회도 가능하다.
아기의 엄마와 아빠는 100일 면회만을 기다리며 준비해 온 예쁜 배냇저고리와 아침에 막 만든 따끈한 백설기를 양 손에 가득 들고 찾아온다. 아기는 이날만큼은 환자복이 아닌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배냇저고리를 입고 한껏 꾸며둔 침대를 배경으로 엄마 품에 안긴 채 기념사진을 남긴다. 100일 동안 잘 버텨준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고 앞날을 축복하는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의 마음이 아기와 보호자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별한 하루를 선물한다.
내게 돌아오는 치유의 시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준이(가명)는 지방에 살고 있어 자주 왕래를 하지 못하는 보호자의 사정으로 혼자서, 아니 우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수술과 힘든 치료를 씩씩하게 견뎌주었다. 준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된 날, 당직으로 밤을 꼴딱 새우고 나타난 담당의사 박 선생님은 이른 아침부터 택배 박스를 가지고 왔다. 박스 안에는 풍선과 장식품 등이 가득 들어있었다. “바쁜 와중에 언제 이런 걸 준비하셨어요!” 다들 모여서 구경하고 있을 때 동료 간호사 한 명이 “선생님이 강아지 친구 만들어 줄게~”라면서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예쁘게 꾸며진 침대에 풍선 친구들과 함께 누워있는 준이는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주인공이 되었다. 행복한 건 준이 뿐만이 아니었다. 100일 동안 밤낮으로 열심히 치료와 간호를 해 온 우리에게도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삐에로 아저씨 성대모사를 하며 풍선을 열심히 부는 동료의 모습, 그 모습이 신기한 듯 발장구를 치며 쳐다보는 아기, 그 주위를 둘러싸 함께 즐거워하는 동료들의 모습… 자리를 뒤돌아 나오면서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은 듯했다.
나를 머물게 하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다.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내게 오롯이 돌아오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 이 한 문장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충분한 답이 되어주었다. 병원에서 100일, 그리고 1년을 맞이하는 아기들의 모습을 통해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이를 통해 오히려 내가 내면의 상처와 절망을 치유하고 극복하며 삶에 대한 긍정을 느낀다.
“봄에 싹을 틔워낸 아가야,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이는 여름이야. 무더위와 폭풍을 이겨내고 여름을 무사히 난 너희는 더욱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을 것이니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계절을 함께 애써 잘 견뎌내어 보자.”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은 2017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고 여린 아기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부모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