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2023.09.06

운영지원팀 구회정 과장

 

▲ (좌) 구회정 과장이 담당 환자에게 오늘의 컨디션을 묻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 / (우) 구회정 과장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깜깜한 상황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 자문형 호스피스 완화의료

 

의식이 명료하지 않던 환자가 주말이 지나 찾아가니 핸드폰을 보고 있다. “아버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산책도 가능하겠어요!” 한껏 들뜬 인사는 임종기 환자를 돌보며 매일 노심초사하는 보호자에게도 격려의 메시지가 된다. 진료과에서 완화의료팀에 의뢰한 15명 내외의 환자 라운딩을 이어가며 힘든 부분을 듣고 감정을 돌본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나 임종 과정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없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더 이상 완치를 위한 치료가 무의미해진 환자들은 완화를 위한 치료로 방향이 달라진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은 철저히 ‘오늘’에 집중한다. 신체적 증상 조절을 최우선으로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쓴다.

 

 

"임종을 앞둔 암환자를 보면서 의미 있는 마지막을 고민하게 됐죠."

- 호스피스 전문 간호의 꿈

 

종양내과 간호사로 입사해 라포가 형성된 환자의 힘겨운 임종 과정을 보게 됐다. 동공이 부어 눈도 감기지 않고 온몸에서 진물이 흘러나왔다. 엄지발가락에 라인을 잡으며 본 환자의 모습은 처음과 크게 달랐다. ‘이렇게 죽어가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해 호스피스 간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포기하고 싶은 고비도 찾아왔다. 그 시기를 버티자 삶이 새롭게 보이고 일상의 태도도 달라져 있었다.

양윤정 차장과 함께 2012년부터 임종을 앞둔 암환자와의 호스피스 상담을 시작했다. 암환자의 생리는 잘 알던 터라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신체적·감정적 부분을 살뜰히 챙길 수 있었다. 명확한 표현으로 진중하게 말하려고 애쓰면서 ‘어차피’ ‘이미’ ‘잘될 거예요’ 등 무의미한 말들은 자연스럽게 거르게 됐다. 

 

 

▲ (좌) 완화의료팀이 환자 상태를 논의 중인 모습.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윤정 차장, 구회정 과장, 이영석 전문의, 엄성범 사회복지사. /
(우)처음 온 환자에게 교육 자료와 개인위생용품 등이 담긴 키트를 증정하고 있다. 키트는 ‘소중한 추억, 의미 있는 여행’ 콘셉트의 여행가방 모양으로 제작됐다.

 

 

"처음엔 저승사자 보듯 했지만 지금은 삶의 질을 높여줄 파트너로 받아들이세요."

- 인식의 변화

 

업무를 막 시작한 무렵, 의료진의 의뢰를 받아 병동에 가자 환자 어머니가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안 돼요, 안돼~”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격렬한 거부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때라 ‘호스피스 판매원’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2017년부터 종양내과 서세영 조교수가 합류하면서 증상 완화 조치를 상의하기 수월해졌고 엄성범 사회복지사가 환자들에게 다양한 지원 체계를 안내했다. 호스피스 병원과의 연계 작업은 진료협력팀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육과 홍보 활동이 진행될수록 원내 의료진과 환자들의 인식은 점차 개선됐다. 암 치료 계획이 더 이상 무의미해 난감해하던 암환자와 가족들은 완화의료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임종기 환자들을 대하는 의료진들의 어려움과 부담을 자주 듣는다. “꼭 뭔가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환자가 편안한지 살펴보고 보호자가 당혹스러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임종 과정을 설명해 줄 것을 권고한다. 혹여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가 없도록 의료진 교육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죠. 다행히 내일이 오면 소중한 하루가 쌓이는 거예요."

- 오늘이 있는 삶

 

직원의 부모님을 종종 의뢰받는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라고 당부하는데,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만나면 다들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시간이 더 있을 줄 알고 못 한 말이 너무 많아요.” 한정된 시간임을 잘 알기에 환자와 가족들에게 한발 앞서 안내하고, 운영지원팀 윤혜원 팀장과 상의해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해 나가고 있다.

올 하반기부턴 서울과 경기 지역의 호스피스 병원들을 방문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된 활동이다. 병원 곳곳의 사진을 찍고 어떤 의료적 처치가 가능한지, 그곳 의료진에게 우리 환자들을 부탁하고 돌아온다. 확신을 갖고 병원을 추천해야 환자들도 안심하게 된다. 그곳에서 잘 지낸다고, 혹은 잘 지내다가 편안하게 임종했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보람도 느낀다. 결말을 바꿀 수는 없어도 준비된 이별 과정에서 누구도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기 때문이다.   

임종 환자의 가족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완화의료팀에서 보낸 사별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누군가 여전히 남편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줘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과연 좋은 기억이었을까 조심스러울 때가 많지만 또 한 번 다짐한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주저 없이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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