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다시 찾은 웃음 2023.09.11

암병원간호1팀 여현정 과장

 

 

2021년 어느 겨울날, 소아혈액종양 무균실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두 번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7살 환아가 이식편대숙주병이 피부에 발생해 전신 드레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무균실에 도착하자 내가 상처드레싱을 할 것을 알았는지 환아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어 진정제까지 투여한 뒤 조금씩 드레싱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가며 벗겨진 피부의 감염 예방을 위해 꼼꼼히 드레싱을 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환아가 계속 울어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드레싱이 끝나고 통증이 호전되니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환아가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고 그 후로 2주간 환아의 드레싱을 맡았다.

 

현지(가명)의 어머니는 베트남인으로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어느 날 드레싱을 받던 현지는 “엄마, 내가 이렇게 아파서 미안해”라고 말했고 그 순간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현지의 어머니가 그동안 얼마나 무서웠을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지 어머니가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며 어떤 치료인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드레싱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상처가 치유되는지에 대해 설명했고 어머니는 번역기 어플을 사용하며 그동안 궁금한 내용들을 물어보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드레싱을 할 시간이 되면 미리 주변 정리를 하고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현지의 피부가 조금씩 재상피화 되면서 1시간 내내 병실에 울려 퍼지던 울음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대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현지는 그 나이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핑크색과 공주드레스를 좋아했고 말도 또박또박 잘하는 아이였다. 피부가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자 현지는 드레싱할 때 사진을 찍어 보여달라고 하며 치료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재상피화가 된 부분과 덜 된 부분을 보여주며 왜 아픈지를 설명해주면 현지는 잘 이해했고 팔을 들어주는 등 의료진에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현지와 만난 지 2주째 되던 날 드레싱을 제거하자 뽀얗게 재상피화 된 피부가 드러났다. 오랜 기간 손 부위도 드레싱을 하면서 글씨 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현지는 작은 손 편지를 수줍어하며 건넸다. ‘저도 나중에 크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균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현지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나와의 만남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보다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매순간 고민하곤 한다. 그런 내 마음을 일곱 살 아이가 이해해주었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고 의료진과 환자 간 치료적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지금처럼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 옆에 계속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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