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네, 인턴입니다!] 어느 당직의 밤 2023.09.25

 

 

하루는 24시간, 한 주는 7일. 그러니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그 중 정규 근무 시간은 대체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총 60시간이다. 서울아산병원에 의사가 없는 시간은 없다. 그러니 남은 108시간은 모두 당직 근무 체계가 갖춰져 있다. 숫자에 어울리게 한 시간에 하나씩 번뇌가 솟아오르는 시간이다.

 

서울아산병원 인턴은 통합당직, 과당직, 온콜(On Call) 당직 근무를 선다.

통합당직은 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등 병원을 12개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 당직 인턴을 한 명씩 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관과 신관은 3개, 동관은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구역별로 휴대전화가 하나씩 지급되어 호출을 받는다. 본인이 배정된 분과와 무관하게 해당 구역에 위치한 모든 병동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과당직은 해당 분과에 전적으로 소속되어 야간 업무를 수행한다. 야간 수술에 참여하는 인턴은 다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술을 집도하는 몇 개 분과에서 과당직을 운영한다. 과당직 인턴은 주로 밤에 생기는 응급 수술에 참여하거나 정규 시간에 시작했지만 오후 7시까지 끝나지 못한 수술의 마무리를 돕는다.

온콜 당직은 원내 기숙사에서 호출을 기다리는 대기 당직이다. 온콜 당직은 자주 발생하지는 않으나 원외에 있다가 호출을 받고 올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정규 근무도 그렇지만 당직 근무의 경우 그날 상황에 따라 업무량의 차이가 크다. 일이 별로 없는 날도 있지만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에 쫓기며 밤을 꼴딱 새우게 될 수도 있다. 인턴들은 이렇게 운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량을 ‘내공’이라고 부른다. 내공이 좋은 인턴은 당직 시간의 대부분을 편하게 보내는 반면 내공이 나쁜 인턴은 다음 날 출근하는 동료들을 피곤한 상태로 맞이하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공에 관한 미신도 몇 개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오늘 일이 없네’라는 말을 하면 바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가하네’ ‘일 적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원망과 걱정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 한때 인턴 라운지에 간식을 사다 놓으면 내공이 좋아진다는 미신이 돌았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일이 줄었는지 모르겠지만 간식 덕분에 당직이 조금이나마 유쾌해진 건 사실이었다. 

 

당직은 힘들다. 잠을 자지 못하고 일하는 것도 힘든데 낮 정규 시간에 비해 인턴 수가 적어 한 명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량이 상당히 증가한다. 여기에 다음 날 정규 시간 근무까지 하면 피로가 벽돌처럼 쌓인다. 아무리 긴장을 유지하려 해도 이렇게 긴 시간을 연속적으로 근무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작은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병원이기에 전공의 수련 규칙에 따라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제한해 환자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야간 당직 중 구역별로 2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보장한다. 이 시간 동안 인턴들은 서로의 구역 업무를 나누어 대신 수행하며 다른 인턴이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게 해 나머지 당직과 다음 날 정규 업무에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한다. 

 

입사 전 인턴 수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상황과 대처방법을 미리 경험하는 교육을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준비한 ‘어느 당직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은 통합 당직 상황을 가정하고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복수의 요청을 받으며 스트레스 상황 하에 놓이는 훈련이었다. 당직 근무는 정서적, 심리적 스트레스 대처 연습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질 정도로 쉽지 않다. 원래 근무지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 파악이 덜 되어 있고 다수의 병동의 일이 겹치는 상황이 한몫한다. 실제로 여러 업무 요청을 동시에 받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이 경우, 의학적 우선순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빠른 처리가 필요한 검사나 처치 업무는 다른 구역 당직 인턴에게 요청해 지연되지 않도록 한다. 

 

한편 당직 시간은 다른 인턴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다. 동관 지하에 위치한 ‘닥터스 바’에는 당직 인턴을 위한 빵, 컵라면, 간단한 음료수와 같은 간식이 있다. 식당에서 도시락을 테이크아웃해 인턴 당직실로 가져갈 수도 있다. 잠시 비는 시간에 출출함을 달래다 보면 다른 구역 당직을 서는 인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그날의 힘들었던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직으로 힘든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함께 고생한다는 동질감으로 빠르게 친해지고 그러다가 누군가의 호출 전화가 울리면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며 일어난다. 

 

오늘도 누군가는 당직의 밤을 보낸다. 환자를 위해 잠을 잊은 그대에게 좋은 내공이 함께하길. 

 

교육수련실
윤성민 인턴

윤성민 인턴은 울산의대 졸업 후 2023년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매달 여러 진료과를 경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느낍니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환자와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료인이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년 1기 필진으로 활동하며 [의대생의 독서일기]를 연재하였으며, 금년 2기 필진에도 선정되어 초보의사의 성장기 [네, 인턴입니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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