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간호사,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태풍의 눈 속에서 2023.09.18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씨를 꽤나 싫어한다. 날이 너무 더워 가끔씩은 비가 왔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지만 보통은 그냥 날이 시원해지기를 바란다. 고여있는 웅덩이를 피해 가는 것도, 신발이 젖는 것도, 자전거를 통해 출근하지 못하는 것도 내가 비를 싫어하는 이유다. 그리고 항상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바쁜 현대 사회 속 한 손에 쥐어진 우산은 그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며칠이고 비가 반복되는 태풍이 오는 기간엔 괜히 더 기분이 우울해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응급실도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공간인 것 같다.

 

가끔 ‘그 시간에도 응급실이 운영하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 응급실은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곳이다. 운명의 신은 응급상황을 두고 휴무일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응급실은 대개 바쁘게 돌아간다. 특히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엔 외래 진료 또한 같이 운영되기 때문에 외래를 통해 응급실에 내원하시는 환자와 보호자도 상당수다. 그런 환자들의 추후 케어를 담당하는 것도 응급실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래를 통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도 충분히 많은 상황에서 병원 밖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으로 또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온다.

 

과부화된 응급실에서는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녹초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남을 헤아릴 여유 없이 나만의 관점으로 환자를 바라보다 보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감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다. 이제는 신규 간호사 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정신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돈을 냈으면 이런 건 다 당신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가까스로 잡은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 어떤 말이라도 시작하는 순간 지금껏 어렵게 지켜온 내 자부심, 자긍심이 깡그리 바스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당장 처치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입실해 자리를 피하듯 그쪽으로 발을 돌렸다.

 

그쪽에는 나이가 많은 노부부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다. 기력이 조금은 있으셨는지 어렵사리 침대에 누우셨고, 나는 초기 처치를 한 뒤에 으레 하듯이 앞으로의 진료 절차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조금 전 나의 마음의 날씨를 한순간에 바꾸었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절대 아무나 못해. 여기가 제일 힘들다고.”

“그럼요, 자부심 없으면 누가 하겠어. 그 마음 하나로 하는 거지.”

 

기쁜 마음은 아니었다. 기쁘기보단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습한 날씨를 뒤로하고 겨우 막 시원한 실내에 들어와 날 힘들게 한 우산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잠시나마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듯했다.

 

응급실은 감정과 사연들로 만들어진 태풍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태풍의 눈은 존재하며, 그 눈이 앞으로도 응급실 간호사로서의 한 걸음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은 2019년부터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고 건강하게 회복실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간호사를 비롯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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