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장소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면 정말 반갑다. 방향 감각이 없는 편인 나는 여행지에서 자주 길을 헤매곤 했다. 덕분에 친절을 베풀어준 길잡이 분들과의 인연을 많이 맺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런 순간들은 아찔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정도는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친절이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겠지만, 나에겐 여행지의 멋진 풍경보다 더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따뜻한 추억이다. 아마도 막막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종양내과 외래 간호사가 받은 칭찬 카드 사연을 보면서 글 쓴 환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분의 표현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더 울림이 있을 것 같아 옮겨 적어본다.
"종양내과에 들어서는 순간 9년 전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그날처럼 너무나도 떨리고 두려웠습니다. 키스칼리라는 처음 들어보는 약을 처방받았는데 어떤 약인지, 내 몸에 맞을지 불안한 마음에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처방전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님께서 생긋 웃으며 내게 이런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그 약 잘 들어요." 나보다 어린 처음 보는 간호사님의 이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났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그 어떤 말, 위로만큼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4주에 한 번씩 갈 때마다 간호사님을 뵈면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건넵니다. 날이 맞지 않아 못 뵐 때도 있지만 종양내과에 갈 때 그 간호사님이 있으면 그냥 반갑고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어떤 약보다도 큰 힘이 됩니다."
“이번 항암약이 잘 들을까요? 암이 나을까요?” 전이성 암으로 완화 목적의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이다. 질병의 진행 정도와 치료의 기대 효과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다. 막막함을 이겨낼 용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과 현재의 상황을 잘 알고 현실적으로 대처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디 즈음에서 설명을 시작할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어떤 대답이 적절할까? 정답이 있는 질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웃으며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약보다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을 계속 되뇌게 된다.
존중은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사소한 듯 보이는 따뜻한 한마디의 말과 표정, 진실한 관심이 존중의 시작인 것 같다. '암 환자의 일상 회복에 동행하는 간호사의 행복 만들기' 두 번째 주제인 ‘존중(Respect)’은 암병원 외래 간호팀원에게 ‘먼저 눈 맞추고 웃으며 인사하는 것,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경청하며 예의 바른 태도를 갖추는 것, 음성을 낮추고 공용 공간에서 품격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존중의 의미가 실천될 때 환자들은 치료 과정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경험이 간호사를 인정해 주는 말로 전해질 때 우리 간호사들도 행복해진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훈훈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종양내과 외래가 되면 좋겠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좁은 공간에 몇 안 되는 사람이 찰나의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웃으며 인사하면 괜히 친근해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 거창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나란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 자주 방문하는 병원에서 한 번쯤 본듯한 의료진을 만났을 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환자분들의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다. 그래서 복도에서 잠시라도 마주친다면 먼저 미소 지으며 인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의 존재도 무의미해집니다’ 라는 간디의 말처럼 먼저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우리도 간호사로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소한 듯 보일 수 있지만 먼저 미소 짓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약보다 더 큰 힘을 줄 수 있다면 하루에 백만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양내과 외래
강은희 차장
2011년부터 유방암, 림프종, 다발골수종 환자의 항암 교육과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종양전문간호사입니다.
암교육정보센터에서 암 피로관리 강좌를 맡고 있으며 환자와 의료진의 의사소통과 건강한 치료적 관계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아가는 외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