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신생아중환자실 에세이] 간호의 기쁨과 슬픔 2023.10.25

 

새해에 도착한 메일 한 통

새해를 맞이하고 첫 출근날이었다. 메일함에는 새해 메시지와 함께 사진 7장이 담긴 메일이 남겨져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 8월 말에 신생아중환자실1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찬이 엄마입니다. 연말부터 연락을 꼭 드려야지 하다가 정신이 없어 오늘에서야 안부를 전해요. 찬이는 정말 잘 크고 있습니다. 의료진 여러분이 200% 힘을 다해 치료해준 덕분이에요. 잘 크고 있는 찬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사진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작년에 선생님께서 인큐베이터 안에서 빵긋 웃음짓던 찬이 사진을 전해 주셨을 때 제가 행복했던 만큼 선생님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신생아중환자실 공용 카메라로 찬이의 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다. 치료를 받느라 힘들 텐데도 환하게 웃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사진을 인화해서 스티커로 예쁘게 꾸민 뒤 깜짝 선물로 찬이 어머니에게 건넸는데 너무나 행복해하며 고맙다고 하셨다. 사진 원본도 메일을 통해 전해드렸는데 그 메일을 잊지 않고 찬이의 근황을 전해준 것이었다. 너무 예쁜 아기의 모습을 우리만 보기 아깝다고 생각해 전해드린 것이었는데 엄마에게는 그 정도로 큰 행복이었다니. 앞으로 보호자의 마음을 더욱 잘 헤아려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다시 만난 우리

“선생님, 봄이에요~” 스피커폰에서 들리는 익숙한 이름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두 계절을 함께 보낸 봄이가 다시 우리를 보러 꼭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봄이의 작은 손등에 주사를 놓고 가래를 뽑을 때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서 선생님들한테 복수해야 한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유모차를 타고 왔던 봄이가 이번에는 우리 손을 잡고 병원 복도를 함께 걷고, 쎄쎄쎄를 하고, 각종 개인기까지 뽐냈다.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있었던 우리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러 와준 것 같아 그저 고마운 마음이었다.

 

봄이처럼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아기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근황을 전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가족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아 몰라보게 건강해진 아이들의 모습과 웃음을 되찾은 보호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한 것뿐인데 다른 일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벅참을 되려 선물 받는다.

 

 

모두의 밤이 평안하길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면 더 없이 좋겠지만 우리는 가끔 슬픈 소식을 마주하기도 한다. 우리가 돌봤던 아기가 아기천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우리에게 종종 소식을 전하며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별의 슬픔으로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에 이틀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또 다시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생명이 우리가 기댈 곳이 돼 주었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오늘도 밤낮 없이 신생아중환자실을 지키는 모든 의료진과 한 시간의 면회를 위해 매일 수백km를 달려 오는 보호자들, 작은 입으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우유를 먹고 있는 아기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만을 묵묵히 해나가며 내 길을 살아가기로 했다. 괴로움에 밤잠 설치던 나도, 아기천사가 되어 하늘로 떠난 너희도 더 이상 아픔 없는 평안한 밤이 되길 바란다.

그러니까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은 2017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고 여린 아기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부모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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