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평범한 하루의 행복 2014.02.12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까맣게 썩어버린 이를 보고 가족들은 치과에 가자고 했지만 ‘이제 곧 죽을 낀데 병원엔 가서 뭐 하겠노.’ 하고 돌아누워 버렸다. 깡마른 등 너머로 힘겹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만성폐쇄성폐질환과 싸우고 있었다. 탄성을 잃고 늘어난 폐 속에 공기가 머물면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병. 이 병을 완치할 방법은 아직 없다.


오토바이와 부부
경상남도 진주.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한적한 도로 위였다. 택시가 떠난 뒤, 한참을 기다려도 오기로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정대현 씨 댁을 찾아왔는데요…” 빨래를 널던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옆 동네 사람이라고 했다. 발걸음을 돌려 그녀가 알려준 곳을 찾아 걷는데,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아내 나이 스물한 살에 스물다섯 살 남편을 만났다. 기관지가 약했던 남편은 기침을 달고 살았다. “선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젊을 적 정미소에서 일하면서 먼지를 많이 마셨던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천성이 부지런한 부부는 매일 해 뜨기가 무섭게 일어나 논으로 갔다. 봄에는 심고 가을에는 거두며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았다. 살갑게 담소 나누며 부부의 정을 쌓을 여유는 없었지만, 세 남매를 낳고 알콩달콩 살았다. 그런 부부에게 뜻밖의 시련이 닥친 것은 2010년. 그녀의 남편이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엎드리면 숨이 차 세수를 하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숨이 가빠져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갑자기 속이 갑갑하다며 힘들어했다. 숨을 마음껏 쉴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남편이 일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대신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사람이 부인이었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동네라 그녀는 오토바이를 배웠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배우는 오토바이 운전, 쉬웠을 리 없었다. 그렇게 타게 된 오토바이였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
남편의 병이 크게 악화하기 시작하면서 응급실에 실려간 것도 여러 번. 그 중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서너 번 있었다. 병원에 가도 치료법은 기껏해야 몇 시간 상태를 호전시켜 줄 수 있는 약과 주사뿐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건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의사의 말에 부부는 기운이 빠졌다. 그즈음, 그의 폐 기능은 25%에서 30% 사이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말했다. 부부는 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살 방법은 없을까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간 서울의 대학병원에선 폐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폐 이식을 위한 검사는 했지만, 등록은 미뤘다. 큰 수술이었던 탓에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정대현 씨 본인도 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TV를 보았다. 적적함을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그 사이 좋은 치료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 2013년 5월. “57세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에게 시행한 국내 최초 ‘밸브 폐용적축소술’이 성공했습니다. 폐 기능이 2배 가까이 좋아지고, 운동능력이 월등히 나아지는 등 결과도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 산소발생기를 끼고 TV를 응시하고 있던 그는 힘겹게 일어나 전화기를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세원 교수(호흡기내과)는 섣불리 시술을 결정하지 않았다. “양쪽 폐가 모두 나쁜 경우이거나 폐에 약한 부분이 있어 찢어질 위험이 있는 경우 시술을 할 수 없습니다.” 검사를 통해 시술 가능 여부를 냉정하게 따졌다. 시술을 받지 못할 경우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앞에 왔던 환자가 시술을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술을 시행했을 때의 장단점을 자세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4개월 뒤, 시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병동에 누워 있는 그의 숨소리와 목소리는 안정되어 있었다. “완치는 아직 어렵지만 좀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진지하게 설명을 해 주던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그의 가슴 깊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사소한 하루 
“아버지 목소리가 너무 좋아져서 기분이 억수로 좋네요.” 때마침 걸려온 딸과의 통화를 끝낸 그가 속내를 털어놨다. “손자들이 오면 데리고 나갈 수 없는 게 제일 안타까웠지. 맘 같아선 예뻐해 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으니까…” 그날 오후, 부부는 함께 과수원에 나가 감나무 가지를 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다음 날 장에 나가 팔 시금치도 뽑았다. 남편을 방 안에 두고 아내는 저녁 식사 준비 중이었다. “부인은 어떤 분이세요?”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사람이지.” 남편이 아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항상 미안했지. 내가 아픈 후로는 한시도 일을 놓은 적이 없으니까.”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함께 저녁을 먹는 부부. “지금은 오토바이 탈 일이 없어요. 예전처럼 남편이 차로 데려다 주니까.” 50대 부부의 애틋한 마음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그의 방 한구석에는 지난 몇 달간 사용하지 않아 천으로 덮어둔 산소발생기가 놓여 있었다. “2년간 저것 없으면 잠을 못 잤어요. 이제는 다시 반납하려고요.”

한 끼의 식사를 같이 먹는다든지, 길벗이 되어 함께 예쁜 꽃을 바라보는 일. 부부를 행복하게 하는 건 아주 사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부부에게 다시 찾아온 평범한 하루. 선물 같은 하루를 보내는 부부를 보며 우리는 중요한 걸 놓치고 살지 않았나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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