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두려움은 용기의 형제 2014.05.09

 

40대 미국 여성 SM은 아무 겁 없이 뱀을 만진다.

그녀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뱀을 보자 호기심이 발동하여 뱀의 비늘을 쓰다듬고 날름거리는 혀를 만지기까지 했다. “이거 정말 재밌는데요.” 하며 더 크고 위험한 뱀들도 만지고 싶어했다. 독거미를 만지려는 것을 종업원이 가까스로 말렸다. 강도가 그녀 목에 칼을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한 적도 있었지만, 너무나 침착한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남자가 질려 달아났다. 그녀의 공포수준은 제로였다. 대체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편도체’가 서서히 딱딱해지고 쪼글쪼글해져 없어지는 희귀한 유전병을 갖고 있다.

 

                                                 뇌 모식도

 

측두엽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감정의 블랙박스라 할만하다.
산길을 가다 바위틈새에 뭔가 꾸물거리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려 했다. 심장박동과 숨이 빨라지고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위험요인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은 편도체를 통해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뱀이 아니라 나뭇가지여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한다. 우리는 위험요인을 마주하면 먼저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를 한 다음, 실제로 위험한 것인지 판단한다. 만약 편도체의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면, 바위틈새에 있는 것이 뱀인지 아닌지 살피는 동안 뱀에 물릴지도 모른다.


이제 뱀을 맞닥뜨릴 일은 줄었지만, 수 천년 전의 인간들이 마주한 위험만큼이나 현재도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야심한 밤에 인적이 드문 길을 피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생존을 연장하려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된다.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공포는 조심성 많은 문지기 역할을 한다. 진화과정에서 제대로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았고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간은 공포스러운 경험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번지점프에 몸을 싣고, 공포영화를 본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스포츠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뚜렷한 이득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비쳐진다. 그렇다면 익스트림 스포츠맨들은 SM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공포를 느낄 뿐 아니라 공포감을 중요한 감정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두려움은 그들에게 더 강한 집중을 요구하므로 자신들을 살아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생활에서 위험을 없애주는 데 신경을 쓰고 산다. 요즘 어린이들은 사육되는 동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필자가 어린 시절만 해도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마을을 탐험하며 실컷 놀다가 배가 고파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이젠 옛말이 되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방치와 자유가 필요한데, 부모는 자식들에게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라는 주문만 한다. 과연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부모의 불안을 덜기 위해서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위험을 없앤다면 우리는 자신의 나약함뿐 아니라 잠재력마저 발견할 기회를 놓칠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때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강 건너편에 있다.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다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용기는 뇌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뱀 공포증이 심한 사람들을 MRI 장치 안에 눕히고 뱀이 든 바구니를 머리맡에 두었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뱀을 가능한 한 자신의 머리에 가까이 가져가라고 주문했다. 피험자가 공포감을 극복하고 뱀을 다가오게 하는 단추를 눌렀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바로 전대상회의 일부(subgenual anterior cingulate cortex)였다. 반대로, 두려움에 굴복하여 뱀을 멀리 보낸 피험자에서는 이 곳의 활동은 떨어지고 편도체만 흥분하였다.


용기는, 두렵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으면 용기는 잠시 뒤 또는 한참 뒤에 천천히 따라온다. 용기는 위대하지만 두려움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나를 휘감으면 조용히 앉아서 기다려보자. 그의 형제 용기가 찾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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