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사람 공부 2015.04.27

 

어릴 때는 위인전을 좋아했다.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는 한번도 위대한 인물이 되려는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옛날 이야기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당시 평범한 가정들처럼 우리 집에도 여러 종류의 위인전집이 있었다. 곶감 빼먹듯 한 권씩 읽고, 다 읽고 나서도 손길이 가는 대로 다시 꺼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위인전을 읽은 기억이 없다. 아예 책 자체를 별로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략적(?) 독서를 했다. 대학입시 대비용으로 우리나라의 근대 소설을 밑줄 치고 정리해가며 읽거나 한국사 과목 점수를 잘 받으려고 역사책을 요약하며 읽은 것이 전부다.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빠가 된 후였다.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고르기 위해 책을 읽었다. 청소년기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어 더 열심히 읽었다. 아이들을 유학 보낸 뒤로는 아이들과의 대화거리를 위해서 서양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시작한 독서는 곧 나를 위한 책 읽기로 이어졌다.

 

2010년 4월, 손가락에 생긴 작은 점 하나가 나의 삶을 뒤흔들었다. 6시간의 수술, 열흘간의 입원, 한 달간 병가를 내고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 혹시라도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책을 들었다. 소위 ‘인문학’이란 것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 때 손에 잡힌 책이 정진홍님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였다. ‘스스로를 부여잡는 자기 경영의 책’이라는 소개문 때문이었다. 3권에 걸친 32개의 주제를 통해 사람과 사건 등 일상적 소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느껴야 하는지 써 내려간 이 책을 읽고 당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 고민하던 나는 새로 눈을 뜬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인문학’을 처음 만났다고 할까?

 

2011년 출간된 정진홍님의 「사람공부」는 사람 이야기가 진정한 공부임을 일깨워준 책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힘’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한마디로 위인전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열심히 고뇌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안중근, 스트라디바리, 체게바라, 료마, 카사노바 등 역사적 인물 이야기도 있지만 나탈리 포트먼, 폴 포츠, 성룡의 이야기도 있고 송해, 이미자, 강경환, 인순이 등 친근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책과 함께 하는 내내 행복했다.

 

‘사람이 기적이 되는 순간’이라는 부제의 「사람공부, 두 번째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했다. 나폴레옹, 찰스 다윈, 진시황 등의 이야기는 얼마 전 타계한 리콴유 총리,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앤디 워홀, 클림트, 카라얀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홍수환, 하춘화, 서진규, 타자기를 만드신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님, 암과 친구가 되라는 한만청 교수님의 이야기 등 저자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남 잘사는 것을 보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진홍님은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 모두가 나의 스승이며 각각의 모습을 공부하고 체화함으로써 자신의 레퍼런스(reference)가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여기서 레퍼런스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총체이다. 즉 사람은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세상을 알고, 보고, 느낀다는 것이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레퍼런스를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공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달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님께서 「일본을 이끌어 온 12인물」이라는 책을 선물해주셨다. 최근 만남에서 일본 근대사에 대한 나의 관심을 아시고는 10여 년 전에 절판된 책을 ‘중고서적 대기등록’까지 하여 어렵게 구하셨다고 한다. 누렇게 바랜 중고 위인전을 펼치며 오늘도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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