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하이든처럼 2014.09.16

늦은 오후 하이든 현악4중주 작품번호 76의 5번 2악장을 듣는다.

 

Largo, cantabile e mesto. ‘매우 느리게, 노래하듯 슬프게’라는 지시어의 중간 악장. 하이든 전 곡 중에서도 매우 서정적이며 깊은 영적 호소력을 발산하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들을수록 매혹적인.

 


 

하이든이 이 작품을 창작하였을 때는 1797년, 그의 나이 이미 65세 때였다. 육신의 나이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으나 음악적으로는 현악4중주 op. 76연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 등 대작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던 시기. 그의 작곡능력은 오히려 최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77세로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였고 특별한 중병 없이 건강하고 원만하게 인생을 마감하였다.


당시의 기준으로 77세라면 매우 예외적으로 장수한 나이였다. 18세기 후반 런던 인구의 평균 수명은 35세. 같은 시기 프랑스 남녀의 15세까지 생존율이 50%. 살아남는 일이 겨우 반타작이던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하이든의 77세 인생은 이른바 ‘만수무강’의 경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다.
 

하이든이 이렇게 천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슈베르트, 쇼팽, 멘델스존…. 좋아하던 음악을 평생 하면서도 일찍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금새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이든이 건강하면서도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파파 하이든(Papa Haydn)이란 애칭으로 대변되는 그의 온화하고 넉넉한 품성, 원만한 대인관계, 낙천적이고 근면한 생활태도,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몰입과 성취가 만들어낸 조화로움이 아닐까 한다.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의 소유자 하이든의 인생도 완전무결한 무병장수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고질병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코 안의 양성종양, 비용종(nasal polyp)이었다. 당대의 유명인사였던 하이든이었기에 유럽의 유명 의사들도 그의 콧병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1791~1792년 런던을 방문하였을 때 유명 의학자 존 헌터와의 유명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헌터는 외과수술을 과학의 반열에 올린 업적으로 평가되는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요 해부학자였다.

헌터가 먼저 하이든에게 자신이 비용종을 수술해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하이든은 이전의 잦은 수술 실패 경험 때문에 사실은 수술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태였다. 하이든이 영국을 떠나기로 한 며칠 전 의사 헌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자신의 병원에 들러달라고. 하이든은 헌터의 병원으로 갔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건장한 청년들이 들이닥치더니 막무가내 그를 침대에 눕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드는 것이었다. 헌터는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수술도구를 들고 다가섰다. 하이든은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며 결단코 수술을 받지 않겠으며 수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소리친 이후에야 겨우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것이 헌터와의 마지막이었고 그의 고질병 또한 다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비용종은 하이든의 작곡생활을 때로 불편하게 하긴 하였지만 다행히도 이 열정적인 작곡가의 막대한 음악적 성취를 방해하진 못했다.


이제 다시 200여 년 세월을 넘어 파파 하이든이 만년에 그리고자 했던 현악4중주의 세계를 만나보자. 하이든 해석의 대가급 연주들만 보더라도 알반 베르크 4중주단, 엔젤레스 4중주단, 이자이 4중주단, 타카치 4중주단 등의 명 연주가 즐비하다. 이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주를 추천하라고 한다면 엔젤레스 4중주단과 이자이 4중주단의 두 연주를 주저없이 고를 것 같다. 이들의 연주는 너무 빠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리지도 않아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지한다. 지금 당장 영혼의 안식이 필요한 분들은 이자이 4중주단의 유튜브 연주 동영상을 이용해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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