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 2018.08.06

 

“어머님이 한달 전부터 팔, 다리가 떨리고 걸음걸이가 나빠지셨어요. 혹시 파킨슨병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돼요.” “요즘 감기기운이 있어 식사를 잘 못하시더니, 오늘 아침에는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셨어요. 응급실로 가야 할까요?”


연세 많은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들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병원에 올 수 밖에 없고, 각종 정밀 검사와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검사를 해보면, 심각한 병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략 1/3은 어이없게도 그동안 복용하던 약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경우로 밝혀진다.

 

소화제를 장기간 과다 복용하면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감기라도 걸려 식사를 못하면 오랫동안 문제 없이 복용하던 이뇨제 계통 혈압약으로 인해 저나트륨혈증이 발생해 혼수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모두 약물과 관련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알레르기 반응과는 다르다. 정상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평소에 사용하는 약인데도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이상 증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데가 많아지고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관절염과 같은 만성 질환을 한두 개쯤은 달고 지내게 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복용하는 약의 수도 많아진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노인은 젊은 환자에 비해 3배 가량 많은 양의 약을 처방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한국 노인의 약물 복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4.1개를 먹고 있고, 약 40%의 노인이 5개 이상을 복용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2017 노인실태조사).


물론 여기저기 아프니 많은 약을 사용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방 받은 필수적인 약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권하는 건강식품, 보조제, 비타민 등… 게다가 자녀들이 효도한다고 준비한 한약까지 더하면 정말 약만 먹고도 배부를 지경에 이른다.

 

너무 많은 종류의 약을 먹다 보면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더 먹기도 하고 덜 먹기도 한다. 제대로 된 용량을 복용하지 않아 적절한 치료 효과가 나오지 않거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고,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 또는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로 병원을 찾게 되었을 때, 약에 의한 문제라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파킨슨병이 생긴 것으로 오인하여 또 다른 약을 처방 받아 오히려 혹만 더 붙이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이런 경우 ‘다약제 복용’에 의한 문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노인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10가지 이상의 약물 투여 시 약물 부작용의 빈도가 무려 17%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의 일차적 이유로는 노화에 따른 생리적인 변화에 따라 약동학(흡수, 분포, 대사, 배설)과 약력학, 신체 항상성의 장애가 있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약물요법은 노인의 급·만성 질환을 치료, 예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무작정 약을 쓰지 않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며, 성공적인 약물 치료를 위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약물과 용량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동반된 다른 질병, 기존에 투여 중인 다른 약물, 질병과 나이에 의한 생리적 변화, 약물을 적절히 투여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고려해야 한다.

 

 

노인에게 안전하게 약을 처방하기 위해 특별히 주의해야 할 약물 목록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으로는 미국 노인병학회에서 제정한 ‘Beer’s criteria’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흔히 처방되는 53개의 약물이 주의해야 할 항목으로 기재되어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노인에게 주의할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를 통해 장기 지속형 벤조디아제핀 제제와 항콜린성이 강한 삼환계 항우울제를 포함한 주의 의약품을 선정하여 발표했고, 여러 국내 연구에서 한국 실정에 맞는 주의 약물 리스트를 제안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어르신들의 약물 복용실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고, 전보다 처방 받는 약의 내용을 보다 쉽게 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병원과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니는 경우 약에 의한 문제가 쉽게 발생하게 된다.

 

점차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많은 어르신들이 전보다 많이 건강해지고 질병 치료에도 발전이 있었지만 더불어 약의 사용도 무척 늘어나고 있다. 약을 제대로 알고 꼭 필요한 만큼 적절히 사용하여야 ‘독’이 아닌 건강을 지키는 ‘약’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알아두면 좋은 ‘약물과 음식’의 상호작용]


1. 항감염 약물(항생제, 항진균제, 항원충제)
일부 항생제는 우유와 함께 복용 시 약물 성분이 칼슘, 마그네슘 등의 이온과 결합하여 체내 흡수가 저해될 수 있다. 체내 흡수의 저하는 약효 감소와 연결되기 때문에 항생제는 반드시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한다. 또한 항진균제, 항원충제 복용 중 술을 마시면 디설피람 작용이라 하여 소량의 알코올에도 구역, 구토,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2. 심혈관계 약물(혈압약, 와파린)

칼슘채널차단제의 기전을 가지는 혈압약은 자몽주스와 복용해서는 안 된다. 자몽주스에 포함된 성분이 칼슘채널차단제의 대사를 저해시켜 약효가 과도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항응고제 종류 중 하나인 와파린은 비타민K로 인해 약효가 저해될 수 있다. 비타민K의 함량이 많은 시금치와 캐일 같은 녹색채소, 콩 등을 한꺼번에 과다하게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3. 진통제
널리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상품명 타이레놀)은 술과 함께 복용할 경우 간독성이 증가할 수 있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술과 함께 복용 시 간 손상, 위장관계 출혈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4. 기타
호흡기 약물 중 테오필린, 아미노필린과 같은 기관지확장제는 과량의 카페인과 함께 복용할 경우 심계항진, 불면, 불안 등의 약물 이상반응이 증가할 수 있다. 갑상선호르몬제제는 흡수율 때문에 공복 투여가 권장되곤 하는데 커피, 자몽주스, 칼슘 함량이 높은 우유 등의 음료와 함께 복용하는 경우 흡수 저해, 약효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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