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전문가 칼럼 음식물 알레르기, 공포의 순간 2020.04.17

 

2006년 봄. 알레르기내과 임상강사로 일하기 시작한지 두 달째. 내 이름으로 외래진료를 하며 두려움과 자긍심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식사 후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졌다가 응급처치 후 의식이 돌아왔다는 20대 여성 환자가 방문했다. 잘못하면 급사할 수도 있는 아나필락시스 쇼크 환자였다. 3번의 경험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중식 코스요리를 먹은 후 갑자기 전신이 가렵고,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배가 쥐어 짜는 듯 아프면서 토할 것 같다가, 숨을 잘 쉬지 못하면서 의식을 잃었고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고 했다. 내가 힘들었겠다며 공감해주자 환자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죽을 뻔한 경험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환자는 나의 첫 번째 입원 환자가 됐다.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 식품첨가물은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검사만으로 음식 알레르기를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 환자도 그랬다. 병력청취로는 어떤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인지 도저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매번 먹은 음식이 달랐고 공통점도 없었다. 정말 답답했다. 환자에게 흔한 음식항원 55개에 대한 피부시험을 시행했지만 알레르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음식 알레르기 진단에서 가장 정확한 검사는 의심되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는 경구유발시험이다. 나는 환자를 입원시켜서 최근 쇼크 직전 먹었던 중식 코스요리 메뉴를 매일 한 가지씩 먹어보게 했다. 첫날은 해산물 덩어리인 팔보채.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대비한 응급처치 준비를 완벽하게 한 후 경구유발시험을 시작했다. 먼저 바늘 끝에 팔보채 소스와 해산물 식재료 성분을 묻힌 후 환자 피부를 살짝 찔러 두드러기가 올라오는지 확인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30분 간격으로 소량씩 증량하면서 충분한 양을 다 먹게 했지만 수시간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차례로 탕수육, 깐소새우, 유산슬, 고추잡채, 짜장면, 후식이었던 찹쌀튀김 등을 먹게 하고 피부시험 및 경구유발시험을 시행했지만 쇼크는커녕 간지러움조차 발생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민망함도 컸고 ‘7일 동안의 입원비를 내가 물어줘야 하나’ 걱정까지 했다. 고맙게도 나의 열정적인 마음을 알아준 환자가 오히려 날 위로해줘서 다음날 퇴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연구실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들리는 CPR 방송. 방금 내가 회진을 다녀온 병동이었다. 급히 뛰어간 환자의 방 앞에 CPR 카트가 와 있었다. 다행히 심정지는 없었고 전공의가 적절히 조치한 후였다. 알아보니 방금 전 친구가 병문안 차 사온 과자, 녹차 아이스크림, 바나나를 같이 먹다가 발생한 일이었다. 그 음식들에 대한 피부시험을 실시했고 녹차 아이스크림에 두드러기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시중에서 파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구입해 다시 검사했는데 특정 회사의 제품에서만 두드러기 반응이 나왔다. 그 제품에 포함된 초록색 천연색소가 문제인 것으로 추정됐다. 환자는 이전 쇼크 당시 찹쌀튀김 접시에 데코레이션을 위한 초록색 시럽이 멋지게 뿌려져 있었고, 전에도 초록색 사탕을 먹다가 의식을 잃었음을 기억해냈다. 중국집 초록 시럽도 피부시험에서 양성이 나왔다. 정확한 초록색 색소 성분을 회사에 문의하였으나 회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환자에게 초록색 색소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피하라고 했다. 그 환자는 1년 후 밝은 표정으로 다시 찾아와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증상 없이 잘 지내왔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알레르기내과 의사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색소와 같은 식품첨가물은 사실 매우 드문 알레르기 원인 물질이다. 성인의 경우 밀가루, 땅콩, 견과류, 갑각류, 조개류 등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소아의 경우에는 이에 더해서 우유, 계란, 콩, 밀가루, 견과류, 생선 등이 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단순 두드러기는 그나마 괜찮지만 천식·발작과 같은 심한 호흡곤란, 심한 복통이 동반되는 설사·구토, 그리고 가장 심한 경우 쇼크도 발생할 수 있어서 정확한 진단 및 예방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혈액 검사나 피부시험으로는 진단하기 어렵고 병력이 가장 중요하다. 자주 증상이 발생하는 환자는 음식 일기를 쓰며 매번 먹은 음식의 구체적인 재료, 성상 및 색 등을 기록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증상이 발생했을 때 섭취한 음식들의 공통 요소를 찾아 원인을 좁혀야 한다. 의심되는 음식을 수주간 먹지 않고 회피할 때 증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최종적으로는 그 음식을 직접 먹고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지 확인하는 경구유발시험으로 확진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치료 방법이 없으므로 음식을 피하거나 증상 발생 시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휴대용 에피네프린 주사를 가지고 다니면서 응급 상황 발생 시 스스로 주사를 주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음식에 대한 면역치료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좋은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근본적인 예방법으로서 엄마가 임신했을 때부터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거에는 아이가 클 때까지 땅콩, 우유, 계란 등을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임신 때부터, 그리고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수 있는 가장 이른 나이부터 일찍 음식을 먹이면 더 예방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니 임신 예정인 분들은 알레르기 위험 음식이라도 골고루 드시길 바란다.

식품 불내성을 음식 알레르기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식품 불내성은 음식에 포함된 물질이 우리 몸의 효소와 반응을 잘 못하거나 다른 생리기전에 직접 영향을 미쳐서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유의 당 소화에 필요한 효소가 없는 사람은 우유 마시고 설사를 하는데 이는 면역 체계와 관련이 없고 음식 알레르기와는 전혀 다르다. 음식 알레르기가 의심되는 경우 알레르기 전문가를 찾아가서 정확하게 진단 받고 예방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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