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 - 국내 첫 생체 폐이식 성공 2018.06.15

엄마 아빠의 폐를 받는다고 할 때도 엄마 아빠가 괜히 저 때문에 고통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가족이 제일 소중하고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게 가족인 거 같아요 병실을 나가려면 무조건 휠체어를 끌고 나가야 하고 혼자는 세 걸음만 가도 숨쉬기 힘들고 화장실 가는데도 3, 4번 쉬었다가 가고 그랬죠

폐고혈압. 낯선 질병과 만나다

 

매일 오르던 학교 언덕길. 화진(19)이는 어느 날부턴가 멈췄다 섰다 반복해야 했습니다. 체육 시간엔 친구들이 두 바퀴, 세 바퀴를 달리는 동안 한 바퀴를 도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자꾸 몸이 붓고 숨이 찼기 때문입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찾은 병원에서 폐고혈압이라는 낯선 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폐혈관의 압력이 높아져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결국 폐와 심장의 기능까지 떨어지는 질병이었습니다. 급격히 증세는 악화하여 두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고 학교는 물론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약 때문에 오는 혈관통에 괴로워 울기도 여러 번.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은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병원에선 폐이식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라고 했지만, 화진이의 폐이식 대기 순번은 멀기만 했습니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매일 심장이 하루만 더 버텨주길 바랄 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죽음이 먼저 찾아오기 전에…

 

어느 날, 갑자기 화진이의 혈압이 20-30mmHg까지 떨어지며 심장이 멈췄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심정지에 하마터면 화진이는 엄마의 손을 영영 놓을 뻔했습니다. 그 순간 엄마는 세상을 다 잃은 듯 했습니다. 또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은 20%, 1년 생존율이 70% 미만이라는 진단에 더 이상 뇌사자의 폐만 기다리진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딸에게 자신의 폐라도 떼어줄 방법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나 생체 폐이식은 우리나라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만난 큰 벽 앞에서 해외 원정 생체폐이식 까지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화진아 우리 일본으로 가자. 생체 폐이식만 하면 싹 나을 수 있대.”
화진이는 자신 때문에 아빠 엄마까지 아프게 하는 거 같아 반대했습니다. 화진이의 눈물에도 이번만큼은 아빠 엄마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딸을 잃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으니까요. 해외 원정이식을 강행한 끝에 일본으로 출국하기 열흘 전.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화진이 아버님이신가요? 여기는 서울아산병원입니다…”

뜻밖의 동행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에서 화진이를 돕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여정에 함께 할 든든한 팀이 생겼다니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당장 수술 날짜도 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일본행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법 문제 해결을 위해 모두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제 딸은 19살입니다. 원인을 모르는 폐고혈압으로 이미 한 번의 심정지를 겪어 생사를 오갔습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부디 생체 폐이식을 허락해 주세요.” 아빠는 딸의 사연을 국민신문고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와 국회를 찾아가 생체폐이식 허용을 호소했습니다.

병원에선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하고 대한흉부외과학회 등에 생체 폐이식 수술을 설득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국내 첫 생체 폐이식 강행에 대한 고민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열아홉 살 여자 아이가 숨을 못 쉬어서 우리한테 도와달라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환자만 보고 갑시다.”라며 의료진을 설득했습니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 덕분인지 2017년 10월 21일. 드디어 생체 폐이식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벌어진 기적이었습니다.

내일을 향해 뛰는 가슴

 

수술 날 아침. 수술장 앞에는 친척들이 모두 나와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화진이와 아빠, 엄마만은 웃으며 수술방으로 향했습니다. 드디어 수술을 받는다는 안도감과 완치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동시에 수술방 4개의 문이 열리며 엄마의 왼쪽 폐 일부와 아빠의 오른쪽 폐 일부를 화진이에게 이식하는 대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려 50여 명의 의료진이 매달린 수술은 8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6일 후. 의식을 되찾은 화진이가 눈을 떴습니다. 우연히 그 날은 10월 27일. 화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마침 친구들의 생일 축하 문자에 화진이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가슴 깊이 채워진 숨을 편안히 내쉬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어느새 눈가를 적셨습니다. “이렇게 숨쉴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해요. 다른 환자들도 생체 폐이식을 얼른 받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화진이의 바람처럼, 곧 보건복지부에서 생체 폐이식을 허용하는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습니다. 화진이의 국내 첫 생체 폐이식 성공이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여행, 강아지와의 산책, 캠퍼스의 낭만… 화진이는 이제 특별한 선물을 가슴에 담고서 행복한 내일을 꿈꿉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내일을 꿈꾸지 않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으니까 기적 같은 해피엔딩도 찾아오더라고요. 다른 환자분 모두 꼭 그 날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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