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지구 반대편서 그린 희망 - 고난도 재건성형 수술, 페루에서 온 안셀로 2016.06.09

페루에서 온 안셀로 산체스입니다. 어려운 수술을 끝낸 안셀로의 모습이 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본보기가 되어 다른 아이들도 희망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루에서 온 안셀로 산체스입니다. 나이는 10살이에요
이제는 안아파서 기분이 좋아요

아이가 아픕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도 아픕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상이 너무 심해서 아이의 왼쪽 손과 귀를 잘라내야 했어요.
그리고 머리가 뼈까지 녹아 허벅지 살을 떼어 이식해 주어야 했고요
치료를 계속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병원에 갈 수 없었어요

머리에 화상을 입고 손도 없고 친구들과 잘 섞이지도 못하고 그런 모습을 볼 때 저 아이를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NGO 단체와 연결되어서 다행스럽게 서울아산병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부분에 뼈가 없어요. 원래 뼈가 건강하게 있고 이 안에 뇌가 있어야 하는데
이 뼈를 이식하고 수술하기 위해서 신경외과에서 안 좋은 피부를 걷고 뇌 주변에 있는 흉터를 다 걷어내고
성형외과 팀이 뼈를 만들어서 이식하고 마지막으로 살을 이식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여러 번에 걸친 수술과 어려운 고비를 안셀로와 가족이 희망을 가지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의료진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줘서 저희도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고요

지난 3개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 의료진 모두가 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봐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페루에 돌아가서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수술을 끝낸 안셀로의 모습이 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본보기가 되어 다른 아이들도 희망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real story 희망을 나눕니다.

화마의 상처

 

10살 소년 안셀로(Anshelo Jesus palacios Sanchez)는 페루의 안데스 산맥 속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16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까하마르까(Cajamarca).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여 산길을 지나면 안셀로가 살고 있는 숙차(Succha)라는 산골 마을이 나옵니다.
숙차 마을에는 대부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집집마다 촛불을 켜고 지냅니다. 깜깜한 밤을 밝혔던 양초는 무심하게도 어린 안셀로에게 끔직한 불행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셀로가 생후 7개월이던 2007년 5월 밤 양초가 넘어지면서 나무 판자집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혼자 누워있던 안셀로를 뒤늦게 집 밖으로 구했지만 몸의 왼쪽 부분은 이미 다 타버린 뒤였습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제일 큰 어린이병원을 찾아 화염에 녹아버린 왼쪽 머리뼈 부분과 왼손, 왼쪽 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3개월을 버틴 끝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더 많은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잘라낸 머리뼈를 대신 할 플래티늄을 머리에 이식해야 했습니다. 노출된 뇌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지 의료 수준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화상에 바르는 연고만 받은 채 안셀로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나아진 건 없습니다. 안셀로의 어머니는 생명이 위험한 수술을 시키고 싶지 않을뿐더러 병원 갈 차비도 없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어머니와 할머니뿐. 어머니는 식당 주방에서 일합니다. 하루 임금이 20 누에보솔. 우리 돈으로 6천원 정도입니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건 산에서 약초를 직접 캐서 만든 크림을 발라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상 입은 머리와 왼팔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긴 팔 옷을 입혀줄 뿐입니다.

제대로 된 약 한번 못 먹은 안셀로는 그저 참고 버팁니다. 고통은 이뤄 말할 수 없습니다. 머리는 조금이라도 다치면 안됩니다. 노출된 뇌가 부딪히면 온몸에 마비와 발작이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몸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손이 잘려나간 왼팔은 몸이 자라면서 점점 민감해지고 있습니다. 왼팔을 끝까지 펼 수도 없는 상태라 그 움직임도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성격은 변해만 갔습니다. 끔직한 상처에 사람들을 만나기 꺼려했고 심지어 가족 앞에서도 숨을 때가 많습니다.

한국인 수녀와의 만남

 

외출이 어려운 안셀로에게 바깥 구경은 그나마 학교뿐입니다. 사실 학교에 가는 이유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산길을 30분 걸어 학교에 도착하면 렌즈콩과 닭고기를 줍니다. 매일 힘겹게 찾았던 학교에서 안셀로는 뜻밖의 사람을 만납니다.

2014년 10월 페루 리마 현지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한국인 석금자 수녀가 우연히 이 곳 숙차의 조그만 산골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수녀의 눈에 유독 띄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머리와 얼굴에 큰 화상 자국을 가진 채 빵모자를 쓰고 가만히 책만 읽고 있는 아이. 바로 안셀로였습니다.

 

석금자 수녀는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가느다란 한 팔로 교실을 청소하는 안셀로가 가여웠습니다. 어렸을 적 화상을 입고 치료도 받지 못한 안셀로의 딱한 사정을 들은 석금자 수녀가 직접 돕기로 나섰습니다. 페루 현지의 병원과 종교ㆍ후원 단체 등을 찾아 도움을 구했습니다. 정부 기관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안셀로의 재건성형 수술에 선뜻 나서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치료비를 지원해 줄 곳도 없었습니다.

5개월 넘게 안셀로의 후원 기관을 백방으로 찾아다닌 석금자 수녀는 2015년 4월 한국 정부의 페루 리마 방문시 우연찮게 한인 만찬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페루 소년 안셀로의 딱한 사정을 정부 관계자에게 말했고, 치료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정부 관계자의 손길은 한국기아대책본부로 이어졌습니다. 한국기아대책본부는 한국에서 고난도의 수술과 치료비 지원이 가능한 기관을 찾았습니다. 아산재단과 서울아산병원이 기꺼이 나섰습니다. 안셀로를 한국으로 초청해 모든 치료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0년이란 긴 절망 끝에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낯선 땅, 마지막 희망

 

안셀로의 어머니 나탈리(Nataly)에게 한국은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입니다. 두렵고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10년간 제대로 된 약 하나 주지 못한 안셀로의 어머니는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마지막 희망을 찾아 머나먼 낯선 땅을 향합니다.

2015년 11월 2일 페루 리마에서 안셀로, 나탈리, 석금자 수녀 3명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경유해 36시간 만인 4일 밤 인천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낯선 사람과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따뜻한 손길을 건넨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체 없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큰 건물은 처음입니다. 15층에 위치한 병실이 타워 같은 높은 곳에 있다고 안셀로는 신기하다고만 합니다. 낯선 환경에 점차 적응하는 안셀로와 달리 나탈리는 웃음이 없습니다. 창 밖만 쳐다보다 석금자 수녀가 곁에 있을 때 그나마 말 한마디 건넵니다. 그저 두렵고 무섭습니다. 수술이 행여나 잘못되면 어쩌나. 떨리는 손을 다잡고 안셀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11월 11일 오전 10시 안셀로가 드디어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화염으로 없어진 머리 왼쪽 부분의 뼈와 혈관을 재건합니다. 또한 운동 기능을 상실하고 점점 굳어가고 있는 왼팔 피부에 자신의 건강한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도 진행합니다. 15시간이 넘는 대수술에는 성형외과 홍준표ㆍ최종우ㆍ서현석 교수, 신경외과 나영신 교수가 참여했습니다.

먼저 피부에 붙은 뇌를 떼어내기 위해 뇌막을 박리했습니다. 그리고 두개골 좌측 측두엽의 결손 부위(12.5cm x 11cm)를 메우기 위해 재건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성인의 경우 티타늄 소재를 통해 간단하게 두개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건을 하지만 안셀로의 나이가 어린 점과 추후 뼈 성장 등을 고려해 본 시멘트 등과 HA라 불리는 첨단 소재를 이용해 뼈가 자라나도록 결손 부위를 메워주었습니다. 결손 부위를 메워준 물질 위로는 금속 그물망(Titanium mesh)을 덮어주었습니다. 결손 부위에 뼈가 정착하는 동안 금속 그물망을 통해 두개골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습니다.

머리 혈관 재건을 위해서는 안셀로의 발목 쪽 혈관을 떼어 내 이식했습니다. 그리고 허벅지 피부를 잘라 떼어 머리 피부도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화상으로 인해 점차 피부가 굳어진 왼팔을 건강한 피부로 재건했습니다. 향후 왼손에 의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성형 재건도 시행했습니다.

 

함께 만든 100일의 기적

 

수술은 이 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0년간 자리 잡은 화마의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도 덮이지도 않았습니다. 두 달여에 걸쳐 총 6번의 짧고 긴 수술이 진행됐습니다. 중환자실을 오가며 힘든 수술은 계속 됐습니다.

치료 도중 아무도 몰랐던 안셀로의 또 다른 병도 발견됐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피가 잘 굳는 혈액응고 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머리 피부 및 혈관 이식에 난관을 겪어야 했습니다. 안셀로의 특수 체질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고 결국에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고난도 재건성형 수술은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힘든 수술에도 안셀로는 씩씩합니다. 수술 부위에 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금세 웃습니다. 나탈리는 옆에서 손을 잡고 노래를 불러줍니다. 점차 건강을 찾고 있는 안셀로는 이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병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또래 아이들과 인사도 합니다. 그래도 하루 빨리 페루에 가고 싶습니다. 단단해진 머리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고 싶다고 합니다.

안셀로는 선물로 받은 크레파스로 그림을 곧잘 그립니다. 가족들과 산골 마을, 교회 그리고 좋아하는 공룡까지. 스케치북 두 권을 꽉 채울 정도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하카드를 직접 그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의료진들의 얼굴도 그려 선물로 주기까지 했습니다.

페루에서 온 안셀로

백일 하고도 이틀. 안셀로가 서울아산병원, 한국에서 보낸 시간입니다. 노랑 빨강 색색의 나뭇잎들이 가득했던 11월을 지나 해를 넘겨 겨울 끝자락 2월에서야 페루로 떠납니다. 낯선 환경에 두려움만 가득했던 안셀로와 나탈리도 그간 많이 변했습니다. 안셀로는 머리가 단단해졌고 얼룩덜룩했던 피부는 건강하게 바꼈습니다. 새로운 왼손도 생겼습니다.

나탈리는 이제 잘 웃습니다. 한국 음식 중 치킨을 제일 좋아하고 한국 사람이 친절하다고 합니다. “3개월 넘게 병원에서 지내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의사 간호사 그리고 옆에 계신 다른 환자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멀리서 온 안셀로와 저를 혼자 두지 않고 가족처럼 대해준 모든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페루에서부터 한국까지 함께 하며 안셀로와 나탈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석금자 수녀는 마지막 인사로 진심의 감사를 전했습니다. “가난한 저희는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댓가를 한 아이의 생명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서울아산병원에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안셀로는 신이 났습니다. 페루로 돌아간다고 하니 좋다고 합니다. “이제 열심히 공부도 해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처럼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 주는 의사 선생님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지구 반대편 한국서 그린 희망을 한아름 안고 안셀로와 나탈리가 고향 마을 페루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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