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들린다 춤춘다 꿈꾼다 - 인공와우이식술, 김다솔 편 2019.03.08

말이 조금 더딘 줄로만 알았던 다솔이는 검사 결과 청각과 언어 중복 장애였습니다. 평생 들을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란 의사의 이야기에 엄마는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이제서야 귀를 갑갑한 듯 후비고 TV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도 태연하던 아이의 평소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다솔 양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부를 때 아이들은 반응하는데 저는 반응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께 알려드려서 대학병원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제가 평생 들을 수 없는 삶을 살 거 같다고...
언제부터인지 귀가 너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 입 모양을 계속 봐야되고 ‘이 이야기가 맞나?’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도 안 들리다보니까 ‘내가 말하고 있는 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나?’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홍주 교수
김다솔 양은 현재 한쪽에 인공와우 수술을 한 상태고요. 수술 후에 그 인공와우 자극의 정도를 어떻게 잘 조절하면서 아이가 크는 동안 잘 관리를 해주느냐가 사실 더 중요하거든요.

김다솔 양
수술하고 소리가 안 들렸다가 갑자기 들리니까 저도 많이 당황했고 기계음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다시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언어 치료도 받고 매핑 검사도 해보고 조금씩 조율하면서..
(인공와우를) 빼고 싶어도 끝까지 찼던 거 같아요. 제가 장애인이라는 걸 크게 인지를 못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애들과 뭔가 다르고 말도 안 통하고, 친구들하고 멀어지고, 학교에 가면 저 혼자 있어야 되고, 혼자 밥을 먹어야 되고. 이런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무용 학원이 있는 거예요.

백유영 서천군립전통무용단 예술감독
다솔이가 초등학교 6학년 초에 저한테 무용을 배우러 왔거든요. 효과음들이나 미세한 선율들을 정확하게 타지를 못 했기 때문에 항상 음악을 들었고, 본인이 직접 연주에 참여했고, 악기 연습도 했고, 이런 것들이 아마 오랜 시간 쌓여서 음악적인 부분을 극복한 것 같아요.

김다솔 양
한가지 춤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일주일 걸리거나 이틀 걸리거나 그러지만 저는 한 달? 예전 같은 경우에는 일 년이 걸렸었거든요. 될 때까지 해요. 시간이 몇 시간이 되든 밤이 되든 새벽이 되든...
춤을 추면 그 뭐랄까 몰입하면 제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춤을 추는 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이렇게 생활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 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너는 장애가 아니다.

백유영 서천군립전통무용단 예술감독
제가 바라는 다솔이에 대한 무한한 제 바람은 지금까지는 이런 선진 사례가 없었다면 다솔이로 인해서 이렇게 좀 불편하지만 실기도 할 수 있고 이론도 겸비한 갖춰진 그런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고.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홍주 교수
아마도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공와우를 통해서도 청각 재활을 하는 데 작용해서 수술한 후에도 결과가 좋은 것 같고요. 최근에 2018년 12월에 검사한 결과에 의하면 수술한 오른쪽 귀의 듣는 정도는 정상하고 똑같습니다.

김다솔 양
인공와우는 저에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니까 또 제가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는지도 목표가 생기고 꿈도 생기고...
저에게 희망이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거 같아요. 어떤 끈을 하나 잡으면 끝까지 놓지 않는 그런 힘?

Real Story 희망을 나눕니다
서울아산병원

다섯 살에 알게 된 청각·언어 중복 장애

 

“다솔이가 도통 불러도 반응이 없고 말을 하지 않아요.”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에 다솔이네 집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말이 조금 더딘 줄로만 알았던 다솔이는 검사 결과 청각과 언어 중복 장애였습니다. 평생 들을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란 의사의 이야기에 엄마는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이제서야 귀를 갑갑한 듯 후비고 TV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도 태연하던 아이의 평소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농학교에 딸을 데려가 보았지만 막상 장애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아이를 가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되돌아와 엄마는 다솔이에게 보청기를 끼우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TV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인공와우이식술에 대한 내용을 접했습니다. 난청 환자의 달팽이관에 인공와우를 삽입하여 전기 자극 신호로 소리를 뇌에 전달해 듣게 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어쩌면 다솔이도 남들처럼 듣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일곱살 다솔이는 수술대 위에 올랐습니다.

높기만 한 장애의 벽

 

인공와우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다솔이는 갑자기 시끄러워진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기계음은 온 신경을 마비시키는 듯 했습니다. 인공와우를 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선 꼭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인공와우이식술의 성공 여부는 수술 후 인공와우의 자극 정도를 지속적으로 조절하면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다솔이는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매핑과 언어치료를 병행하며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찾아갔고 발음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었지만 또래 친구들 앞에 서면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지, 잘못 알아듣고 실수하는 건 아닌지 매번 겁이 났습니다.

되묻기도 부끄러웠던 다솔이는 스스로 혼자가 되어갔습니다.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더디고 버거웠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쓸쓸한 하굣길에 우연히 무용 학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학원 앞을 서성이며 고민했습니다. 용기를 내 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민하고 숫기 없던 다솔이는 점차 선생님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하며 솔직하고 자유로운 몸의 언어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를 딛고 서게 한 용기

 

다솔이는 무용을 시작하기 전까지 안타깝게도 음악을 들을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음악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낯선 감각과 채 완성되지 못한 청력으로 음악의 비트를 정확히 맞추거나 미세하게 들리는 효과음을 포착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몇 시간 이면 익히는 음악과 무용을 다솔이는 수도 없이 반복하며 될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또 무대에 오르기 전이면 인공와우의 건전지가 방전되진 않을지, 비에 젖지는 않을지 늘 점검했습니다. 불안을 잠재우려면 완벽해야 했습니다. 혹시 음악이 들리지 않더라도 춤을 끝마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지칠 때도 많았지만 춤을 추기 시작하면 잡념이나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뚜렷한 자신만의 목표를 이루는데 장애는 걸림돌이 아닌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03년 검사 결과, 단어를 알아듣는 능력이 7%에 불과했던 다솔이는 2018년 12월의 검사에서 88%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장애인 친구들과 경쟁해 한국종합예술원 무용이론과에 당당히 입학했습니다. 인공와우를 이식받은 후 많은 기회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다름’이 주는 ‘특별함’

 

2018년 10월 24일에 열린 인공와우 1500례 기념식 및 환우회에서 다솔이가 무대 위에 섰습니다. 관객석의 인공와우 환우들과 그 가족은 그녀가 같은 청각 장애인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춤을 추고 난 뒤, 마이크를 잡고 “저는 서울아산병원이 아니었으면 무용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당당히 장애를 딛고 자신감 있는 무용수로 서기까지 그녀의 모든 노력과 수고를 위로하는 박수였습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박수 소리와 격려의 말들은 만약 인공와우이식술을 받지 않았다면 평생 듣지 못했을 겁니다.

앞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예술가로 성장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희망을 굳게 잡으면 어떤 한계도 넘을 수 있다는 걸 인공와우 환우들에게 멋지게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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