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를 안심시키며 간호를 이어가는 김영용 주임(왼쪽)
"특수 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확진자를 간호합니다. 무겁고 갑갑한 보호구를 입은 채로요!"
격리중환자실의 하루
오전에 도착 예정이던 전원 환자가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전원 보내는 병원과 구급차, 보안관리팀과 긴밀한 상의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보안관리팀의 경로 통제를 받으며 환자가 도착하자 순식간에 기도 삽관을 하고 중심정맥관을 넣었다. 레벨D 보호구를 착용하면 행동이 2배는 느리게 느껴진다. 윙윙거리는 필터 소리에 동료 간호사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격리실 내부에서 일하는 4시간은 그야말로 초집중 상태다.
지난해 10월 격리중환자실 근무를 시작했다. 확진된 중환자가 음성 판정을 받거나 투석기, 인공호흡기, 체외순환기와 같은 특수 치료를 마칠 때까지 돌보는 업무를 맡는다.
"환자들을 설득해야 할 때가 많아요. 환자보다 환자의 몸을 더 생각하죠."
설명과 설득
한 환자가 직장에서 확진된 스트레스를 간호사들에게 투사하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 “환자분, 속상하시죠? 하지만 지금은 호흡이 중요하니까 숨 쉬는 데 집중해 주세요”라고 안내했다. “왜 멀쩡한 사람을 가둬요? 네가 뭔데?”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 없는 항의에 감염 관리와 격리 치료 과정을 납득시켜야 할 때면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조금 버겁다.
“물 좀 주세요.” 또다른 금식 환자가 애원했다. “산소 요구량이 높아져서 위험할 수 있어요. 기관 삽관을 할 수 있어 흡인 위험이 있으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대신 거즈로 입을 닦고 스프레이를 뿌려 마른 입안을 적셔주었다. 환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했다. “제가 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중증 환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볼수록 코로나19가 참 무서워요."
누구에게나 처음인 바이러스
“엄마 왜 거기 누워있어? 나랑 여행 가기로 약속했잖아.” 환자의 딸이 CCTV를 보며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했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엄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간호사들은 눈물을 삼키며 임종 면회를 진행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조차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슬픔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 가세요.” 격리중환자실에서 느끼는 코로나19의 실상은 예상보다 훨씬 냉혹하다. 무증상자가 많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중증 환자들과 있다 보면 감염병에 익숙해지기는커녕 두려움이 쌓인다. 그래서 병원과 집만 오가며 최대한 조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확진자가 연일 1,000명을 넘긴 근래에는 9개의 베드가 비는 틈이 없었다. 각 부서의 간호사들이 모인 곳이지만 누구에게나 처음 만나는 상황의 연속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새로운 약과 치료법, 정보도 계속 쏟아졌다. 매월 ‘열공데이’에 동료들과 관련 논문을 공부하며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도 간호 현장에선 “이건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격리중환자실은 걱정과 불안이 머무는 곳이지만 기쁨과 보람도 많습니다."
매일 기다리는 이별
목에 기관절개술을 한 환자가 입원 내내 우울해했다. “할머니~” 하면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반응은 같았다.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주자 환자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곤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기 싫은 듯 이내 끊어 버렸다. 어떤 것을 하면 좋아하실지 고민했다. “우리 운동을 해보는 거 어때요?” 동료 간호사들과 환자를 침대 난간에 앉히고 쉬운 동작을 함께 했다. 경직된 몸을 풀자 긴장도 풀어지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김치 해봐요, 김치~” 얼결에 미소 띤 환자의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 기분이 나아질수록 몸 상태도 호전되었다. 곧 일반 병동으로 전동 결정이 났다. ‘또 한 번 무사히 위기를 넘겼구나!’ 오늘처럼 반가운 이별은 격리중환자실 간호사들의 희망이자 보람이다.
기분이 좋아 격리실에서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다. 아들의 웃는 표정보다 육중한 보호구만 보이는지 ‘위험한 데서 고생하네’라는 걱정 섞인 답문이 왔다. 코로나19가 끝나야 엄마의 “몸조심해”라는 당부도 끝날 것 같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격리중환자실에서 침착하고, 치열하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