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검은 차도르를 입은 이웃 2015.01.20

지난해 7월, 검은 차도르를 걸친 한 여성이 가족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게이트 위 전광판에는 그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보여주는 글자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UAE(아랍에미리트). 그녀의 가족은 왜 먼 땅 중동에서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차도르 속 이야기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 출신의 파티마 씨(27)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첫째 아들 나세르는 아기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영특하고 애교도 많아 늘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그런데 4살 될 무렵부터 나세르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울었다. 구토를 하고 열이 40도까지 오른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면 매번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항생제와 수액 밖에 달아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갑자기 시작된 병의 이유를 찾기 위해 미국에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마침내 밝혀진 병명은 ‘유전성 고수산뇨증’. 간에서 나오는 특정 효소가 과잉 생산돼 시간이 지나면 신장에 돌이 생기고, 간 기능도 점점 저하되는 병이었다.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이 병의 완치법이 아직 없다는 것이었다. 

 

병을 진단받은 이후 엄마 파티마 씨의 삶은 기다림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신장에 쌓인 돌은 곧 나세르의 작은 몸에 큰 고통을 주었다. 나세르의 몸은 약해져 응급실 가는 횟수도 늘었다. 하지만 나세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간 기능이 저하됐다. 수소문 끝에 찾은 지인의 도움으로 가족 모두 독일로 갔지만 ‘소아 간이식 수술은 어려운 수술’이라며 치료를 거부했다. 또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뒤, 파티마 씨는 아부다비 병원의 담당 의사에게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아부다비 보건국의 도움으로 세계 최고의 간이식 기술을 가진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는 것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낯선 나라, 따뜻한 사람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했습니다. ‘나세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약 8시간의 비행 후 한국에 도착한 파티마 씨는 곧 우리 병원 국제진료센터의 코디네이터, 파라 씨(27)와 만났다. 파라 씨는 통역과 진료 안내 외에도 파티마 씨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수술날이 다가왔다. 기증자는 파티마 씨였다. 수술 전, 엄마의 뺨에 얼굴을 대고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던 나세르를 보며 파티마 씨의 가슴이 저려왔다.

 

“제 마음을 아는 지 의사는 언제나 안심하라며 따뜻한 말을 건넸고, 간호사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소아외과 김대연, 남궁정만 교수의 집도하에 이루어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간 이식 수술 후 나세르의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가운 입은 사람은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며 오석희 교수(소아일반과 김경모 교수팀) 를 보면 도망 다니던 나세르는 이제 그에게 안겨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릴 만큼 다시 예전의 개구쟁이로 돌아왔다. 나세르는 잘 견뎌주었다. 

 

차도르를 입은 친구   

 

병원에 머무는 동안 환자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이던 파라 씨는 어느 날 파티마 씨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나세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파티마 씨의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던 것이다. 파티마 씨의 퇴원 날이 다가왔지만 좀처럼 그녀의 작은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파티마 씨의 퇴원 전날 파라 씨는 드디어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파티마 씨의 퇴원을 축하하며 간 이식 병동 간호사들이 준비한 작은 케이크 앞에서였다. 늘 긴장한 듯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담기자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 간호사들의 얼굴에도, 파라 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파라 씨와 담당 의료진들은 파티마 씨의 초대를 받았다. 파티 장소는 나세르의 병실이었다. 그곳에는 파티마 씨가 특별 주문한 3단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모인 의료진에게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년은 제게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그간 힘들었던 기억, 아팠던 기억을 지웠습니다. 가족같이 따뜻하게 대해 줘 고맙습니다.” 파티마 씨는 아산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그리고 지난 12월, 출국 절차를 밟으러 국제진료센터를 찾은 파티마 씨는 막 병원에 도착한 아부다비 출신의 한 부부를 만났다. 부인으로부터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파티마 씨는 부인을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 “다 좋아질 거에요. 안심하세요.”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차도르의 여인. 그녀 역시 자식 걱정에 울고 웃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올해 6월 파티마 씨는 나세르의 신장 치료를 위해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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