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16일간의 희망 여행 2015.08.18

기스트(위장관기질종양, GIST)는 식도에서 항문까지 위장관 내에 발생하는 암이다. 점막 등에 종양이 생기는 일반 암과는 달리 근육층에 발생한다. 인구 10만 명 당 1~2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 매해 100~300명 정도가 악성 종양 환자로 진단된다. 기스트를 앓는 오세욱 씨와 강대식 씨. 이 이야기는 땅끝마을 해남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16일간 430㎞를 행진한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두 남자

 

강대식(61세)씨는 지난 2009년 위 기스트를 진단받았다. 2014년까지 항암제를 복용하다 지금은 중단했다. 오세욱(50세)씨는 2010년 십이지장 기스트를 진단받고, 장기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5년 전 암이 간으로 전이됐고, 수술 후 현재는 항암제를 복용 중이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세욱 씨는 수첩에 25가지의 소원을 적었다. 수영 심판 자격증, 굴삭기 운전 자격증, 중국어 마스터…. 강대식 씨는 담배를 끊고, 암 환자를 위한 상담 봉사를 시작했다. 말동무나 되어주겠다며 시작한 게 벌써 6년이나 됐다. 2014년 9월, 정기검진을 하러 병원에 온 오세욱 씨에게 강대식 씨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국토 종단에 도전해 봅시다.”

 

오 씨 역시 희귀 질환 환자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동참을 약속했다.

 

   “형님! 같이 걸으시죠.” 


긴 산책

 

오세욱 씨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긴 산책’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1년 전 기스트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고 떠난 김성환 씨 때문이었다. 2014년 4월 오세욱 씨는 기스트 말기 환자였던 김성환 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김 씨는 부산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국토 종단을 하고 있었다.

 

   “제가 긴 산책을 하는 이유는 기스트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과 일기를 기스트 환우회 인터넷 카페와 소셜미디어 등에 올렸다. 환우 몇몇이 동행이 되길 자처했다. 오세욱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경기도 오산에서 성남까지 약 30km에 이르는 거리를 함께 했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며,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됐다.

 

   “내년엔 꼭 함께 전 코스에 도전합시다”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작년 12월 김성환 씨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긴 여행을 떠난 그를 기억하며, 두 남자는 국토 종단을 준비했다.

 

   ‘김성환 님! 당신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간 영웅입니다. 우리의 긴 산책을 응원해 주세요.’

 


동행

 

5월 11일 땅끝마을 해남에서 출발해 광주-전주-논산-세종-용인을 거쳐 26일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서울아산병원을 최종 목적지로 정한 건 국내 기스트 환자의 40% 이상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전 구간을 걷고, 전국 기스트 환자들이 코스마다 합류하기로 했다. 출발 하루 전, 땅끝 마을 전망대에서 13번 국도까지 종단 첫 날을 함께할 동행이 도착했다.

 

종양내과 강윤구 교수·류민희 부교수와 5명의 연구간호사(강영애, 마정은, 박희영, 백모열, 전진)였다. 다음 날 아침 마을 표지석 앞에서 ‘긴 산책’의 출정식을 가졌다. 일행은 김성환 씨의 용기 있는 도전을 기렸다. 마침 하늘에서 가느다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꼭 완주할 테니 응원해 주시오.”

 

고비    

 

국토 종단은 하루하루 난관의 연속이었다. 국도를 걸을 때면 쌩쌩 달리는 차들로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짐을 꾸려 넣은 배낭의 무게, 8kg. 양쪽 어깨 근육에 마비가 왔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피부가 약해진 오세욱 씨의 양쪽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자 고통은 배가 됐다. 처음엔 조그맣던 물집이 점점 커졌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못에 찔린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 그러나 걸음을 늦출 순 없었다. 코스마다 그들과 함께 걷기를 기다리며, 밥을 대접하고, 간식을 건네주던 환우들을 생각했다.

 

강대식 씨 역시 힘이 들면 봉사하다 만난 환우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의료진이 보낸 안부 문자를 읽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서울아산병원에 다다랐다. 가족들과 환우들, 그리고 의료진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해냈다!”

 

2015년 5월 26일, 해남부터 서울아산병원까지 16일간의 국토 종단을 완주한 두 사람이 지나온 거리는 총 430km이었다.

 

   “형님, 우리가 해냈어요.”

 

용기

 

    “저야 좋아서 한 일이지만, 가족들 걱정시킨 걸 생각하면 미안하죠.”

 

오세욱 씨는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강대식 씨는 아들 둘을 둔 가장이다. 주변 사람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이 물었다.

 

   “국토종단? 그 힘든 걸 왜 하려고 해? 몸도 성치 않은 사람들이.” 

 

그들은 매일 8시간, 30km를 걸었다. 

 

   “코스마다 함께 걸어준 사람들, 우리를 응원하러 찾아와 준 사람들, 지켜보는 환우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죠.”

 

출발 전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1km 마다 50원씩 기부를 부탁했다. 그들이 완주할 경우 총 2만 1,500원의 금액이다. 종단을 마치던 날, 약 700만 원이 모였다. 그 돈은 약값으로 힘들어하는 기스트 환우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두 남자가 기스트 환우 회원들에게 출발을 알리던 날, 한 환우는 이런 응원의 글을 남겼다.

 

   “살면서 한번은 꼭 하고 싶었던 일. 다음에 여유가 되면 하자고 미루어 두었던 일. 그러다 마음속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

    제게도 그런 일이 있지요. 그까짓 게 아무리 힘들지라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훨씬 덜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 길이, 어쩌면 인생이다.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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