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노래 이야기 2015.12.08

 

노래로 위로받는 사람들


5년 전부턴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우리 병원에 찾아오는 모자(母子)가 있다.

병원의 입원 환자도 아니고 외래 진료 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병원 누군가의 가족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단 한 가지. 노래를 듣기 위해서다.

 

“이곳에 와서 노래를 듣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낙이에요. 평소엔 표정도 별로 없으신데 이곳에 오면 아이처럼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20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의 어머니는 웃음과 함께 말수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서울아산병원 ‘사랑의 음악회’. 그곳에서 아이처럼 웃는 어머니를 보게 됐고, 이후 음악회가 있는 날이면 매번 이곳을 찾아왔단다.

 

“집 밖엔 거의 나가지 못하시니 이곳에 와서 노래를 듣는 게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시죠.”  

 

동관 6층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복도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 링겔대를 밀며 걸어오는 환자들로 금세 북적거린다. 이들이 서둘러 향하는 곳은 바로 대강당. 그곳에선 투병생활에 지친 환우들을 위해 병원에서 준비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잠시나마 힘든 마음 싹 잊고 힘내시라 병원에서 준비한 음악회인데, 관객 중 몇몇은 그 흥겨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얼굴을 활짝 펴지 못한다. 그런 관객들까지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 있다.

 

“1년 반 만에 암을 이겨내고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가수를 소개합니다.”

MC의 멘트가 끝나자 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오는 가수. 그녀의 이름은 최천경이다. 이제 그녀의 ‘노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가수 최천경을 아시나요? 


그녀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 시작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수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였다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지 노래 부른다는 게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죠.”

 

그녀는 20대 초반 ‘젊음의 행진’이라는 당대 최고 인기 가요 프로그램의 고정 오프닝 그룹 ‘통크나이’의 멤버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80년대 아이돌 가수였다.

아주 짧았던 전성기를 뒤로 한 채 결혼과 함께 무대를 떠난 그녀는 의류 사업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20년 만인 2010년 3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즈음 서울아산병원의 ‘사랑의 음악회’ 활동도 시작했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녀에게 유방암 선고가 내려진 것은 2010년 말이었다.

 

유방암 3기. 수술을 받고 1년 반 동안 항암 표적치료를 받았다. 이제 다시 노래는 못하겠구나 생각하던 차,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천경아, 아프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음악치료라는 것도 있다잖아. 나와서 노래해라.”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 목소리도 안 나올 거 같았는데 막상 무대에 서서 노래해 보니 마음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 졌단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공연하러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 ‘사랑의 음악회’ 활동은 빠진 적이 없다.

 

“무대에 서려면 어쨌든 관객들보다 더 즐겁고 건강해 보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곳에 서면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뛰어요. 그러다 보면 엔도르핀이 도나 봐요. 무대를 내려오면 어느 순간 힘이 충전돼 있더라고요.”  

 

어느 날은 공연 도중에 한 아주머니가 손을 번쩍 들고 갑자기 무슨 암이었느냐 물어보시더란다.


가슴을 두 팔로 감싸 안고 고개를 돌리며 “가슴이… ” 하고 말았는데, 노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니 그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 자궁암이에요. 다른 곳으로 전이돼서 치료가 길어지고 있어요. 그래도 노래 들으면 몸이 좋아지는 거 같아서 이곳에 왔는데…”

 

최근 들어 많이 힘들었는데 무대에 다시 선 천경씨보며 기운 낼 수 있었다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마음속에도 음악이 흐르는 병원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건 종양내과 정경해 부교수의 공이 크다.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어요. 정 선생님 만나러 갈 때마다 10년씩 생명 연장받는 기분이라고요. 정 선생님은 정말 해피바이러스 같은 분이세요.”

게다가 환자의 아픔까지 너무나 잘 이해해 준단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 서서 노래하는 가수인 그녀에게 항암치료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바로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였다. 그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정 교수는 그녀를 만나면 항상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정 교수와 만나며 마음속에 긍정의 싹이 자라났고, 우울하던 마음도 점점 밝아졌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한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차라리 나니까 다행이라고. 누가 나만큼 민머리가 이렇게 잘 어울리겠어 하면서요. 호호.”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이면 자신이 환자라는 것도 잊을 만큼 행복하다고 한다.

 

비록 젊을 적 인기는 사그라졌지만 그녀는 더 멋진 인생의 날개를 활짝 폈다.


“아프기 전 무대에 섰을 때와 아프고 난 후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이 너무 달라요. 지금까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역시 노래를 부를 때 행복을 하구나!’ 해요. 지금은 노래하는 게 항상 간절하고, 무대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노래 이야기’가 있는 ‘사랑의 음악회’는 매월 넷째 주 월요일에 공연된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렵다면 오후 12시, 신관 1층 로비로 가보자.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과 영화 음악이 흐르는 그곳엔 사랑의 음악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단, 30분만 공연되니 서둘러야 한다. 이번엔 눈이 즐거워지는 시간이다.


노래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동관 대강당에선 매월 넷째 주 화요일에 최신 영화가 상영된다.  

모두 놓쳤다 하더라도 아쉬워하지 말길.

언제라도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동관 1층 로비에 준비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곳에는 또 어떤 이의 ‘그림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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